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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Sep 02. 2024

카멜레온과 지갑

조카들과 함께 8월의 어느 토요일, 양재 AT센터에서 열리는 국제 양서파충류 박람회를 다녀왔다. 파충류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조카들이 도마뱀을 좋아해서 가게 되었는데, 규모가 굉장히 크고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우리나라에 양서파충류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전시된 동물들은 뱀, 도마뱀, 개구리, 카멜레온, 거북이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파충류의 가격이었다. 도마뱀이 제일 많았는데 30~50만 원대가 기본이었고, 손가락만 한 사이즈에 1,500만 원, 2,500만 원, 3,000만 원 하는 도마뱀들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건 3,500만 원 도마뱀이 현장에서 판매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마뱀은 주로 손가락 한 개, 두 개 정도 되는 사이즈였고, 내가 보기에는 모두 비슷하게 보였다. 저렴한 건 2~3만 원짜리도 있었는데, 도무지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판매자들에게 물어봤다.


"가격이 무슨 차이예요?"

"나이, 패턴, 생김새, 색깔, 암수 구별, 번식 방식 등에 따라 달라요."

"제가 보기에는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김태희 옆에 오나미가 있으면 김태희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예쁜 애들을 더 좋아하는 거죠."


도마뱀의 생김새를 보고 김태희와 오나미를 연상하며 말하는 이들이 놀라웠다. 그들 보기에 아주 디테일한 특정 요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보면 계란 같은 얼굴형, 큰 눈,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 백옥 같은 피부를 보듯이 말이다. 그들도 파충류의 생김새를 판단하는 전문적인 요소가 있겠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관심도 없던 전시장을 몇 바퀴 돌았는데, 나도 모르게 도마뱀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렴한 도마뱀을 사서 조카들에게 선물로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지갑에 돈이 별로 없었다. 내 여유돈은 십만 원 정도였는데, 그들이 말하는 못생긴 5만 원짜리 도마뱀을 2마리 살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고민 중에 문득 도마뱀이 사람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줄지 몰라 조회해 보니, 도마뱀이 냉혈동물이라 그런지 살모넬라균 같은 세균들이 있어서 도마뱀을 만지면 반드시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조카들을 위해 도마뱀 구매는 곧바로 포기했다.



도마뱀을 사지는 않았지만, 그 전시장에 있는 수 백 마리의 양서파충류 중 가장 귀여운 파충류를 한 마리 사고 싶었다. 바로 베일드 카멜레온이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게 에메랄드빛을 띠고 나뭇가지에 느릿느릿 매달려 있는 게 무척 귀여웠다. 검은 점 같은 눈알이 박혀있는 반원구 모양의 눈두덩이가 기계처럼 360도로 돌아가면서 주위를 살피는 카멜레온. 발가락은 특이하게 2개씩 달려서 승리의 브이자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5개의 발가락이 있다고 한다. 도마뱀처럼 징그럽게 생기지도 않고 유니크하고 신기하게 생겨서 갖고 싶었다. 그런데 케이지까지 사려면 30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했다. 요즘 돈이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카와 함께 돈을 모아서 올 연말에 베일드 카멜레온을 두 마리 사서 함께 키우자고 했다. 그래서 요즘 카멜레온 시세를 확인하곤 한다.


파충류를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보고 동네 초등학교 근처에 파충류 가게를 하나 차리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 제법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곤충들도 함께 팔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파충류와 곤충들을 키우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성공하는 사업가는 내가 안 좋아도 고객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사업가 마인드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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