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리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후배와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부딪혀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많이 나고 어이가 없다고 했었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나만해도 하루에 수없이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와 스치고 살짝 부딪히지 않는가.
언젠가 내가 본 글에서 나라마다 사람들의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거리와 영역이 다르다고 한다. 미국처럼 국토 면적이 넓은 국가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전원주택 같은 예쁜 집에서 개인과 가족의 공간을 넓게 살기 때문에 개인만의 영역이 넓다. 반면 우리나라같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나라는 개인의 영역이 상당히 좁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과 부대껴도 크게 힘들지 않고 스치거나 살짝 부딪혀도 그러려니 하지만 자신의 영역이 넓디넓은 외국인에게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서 충격을 가하는 한국사람이 아주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서로의 영역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단어 인터스텔라는 별들과의 거리를 뜻하지만 아주 먼 거리를 나타낼 때도 인터스텔라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나는 인터스텔라의 의미가 좋았다. 아주 먼 거리. 그래도 혼자가 아닌 다른 별들과의 거리. 아주 먼 거리지만 서로가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거리. 먼 거리의 여유가 좋다.
사람마다 자신의 영역이 있다. 영화 GO에서 주인공 아빠는 아들에게 주먹을 뻗어 한 바퀴 돌아서 그려지는 원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며 그 안에서 살면 안전하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를 나오면 수많은 적들이 득실득실거리는데 나올래?라고 물어본다.
어린 주인공은 안에 있는 건 시시해서 나오겠다고 하며 자신을 억누르는 것들과 부딪혀 싸워나간다.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한다면 멋은 없지만
나는 조금 원을 크게 그려서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영역이 넓고 자유로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공간을 편하게 공유한다. 그런 사람은 때로 타인도 자기 같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영역도 자유롭게 들어오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주 무례하고 불편하며 불쾌하고 화가 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영역이 좁고 폐쇄적일 수 있다. 틀린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것이다. 싸울 일이 아닌 서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나는 다른 면이 있으면 이해하기보다는 화내고 싸운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정서적, 신체적, 관계적 다양한 거리와 지켜야 할 선들이 있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많은 선들이 무너지고 있고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많은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세상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거리가 보장되지 않아 예민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편할 수 도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성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외톨이인 사람들이 합법적 공식적으로 모두 외톨이처럼 지내야 하는 시대에는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어떤 위안을 느낄 것 같다.
결벽증 환자에게 소독제가 수많이 배치되어있는 현재의 삶이 안도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벽증 환자가 손소독제를 열심히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마음에 편안함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거리두기를 통해 안식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녹록지가 않은 치열한 삶에서 자신만의 쉴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안전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치유할 시간과 공간, 자기만의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행성 간의 거리를 말하는 인터스텔라.
너와 나의 거리.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의 거리. 멀지만 그래도 다다를 수 있는 거리.
가깝지만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거리.
미묘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거리가 신비롭다. 거리를 어떻게 조율하고 여행할지 서로에 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꿈과의 인터스텔라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플랜 A, 플랜 B를 세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