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은 주민센터로 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동이었다. **동 주민센터 건물로 들어갔다. 민원인이 아닌 직원으로서의 주민센터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큼 긴장되고 설레고 두려웠다. 모든 첫걸음은 그런 것 같다. 3년이 지나 다른 부서로 이동하며 마지막 발거음을 했을 때의 또 다른 무서움과 아쉬움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나의 첫 업무는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하는 일이었다. 그 외에 수많은 서류들을 발급하는 민원대 업무였는데, 종류가 많고 익숙지가 않아 한번에 여러 서류를 떼러 온 민원인을 한 시간 정도 앉아두고 헤맨 적이 몇 달은 된다. 내 업무가 너무 느려서 은행 볼일을 보러 갔다 오거나 이따가 온다고 했던 민원도 있었다. 신경질을 내며 빨리 좀 해야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도 옆에서 도와주지를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야속하고 서운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서류 발급은 도와주기가 그렇다. 발급자 이름으로 서류가 나가기 때문에 발급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옆에서 콩나라 팥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등에 땀이 나고 어쩔 줄 몰라도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려도 내가 책 보고 사례집 보고 법률 찾아보면서 발급을 해야 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보내니 서류가 익숙해졌었던 것 같다. 내 사수는 젠틀하지만 사람을 열 받게 했다. 처음 온 나에게 서류를 빨리 발급하라고 했는데 화가 났다. 빨리라는 단어를 신입에게 쓰는 것 자체에 기분이 상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분파다. 날 기분 나쁘게 하면 조금 참다가 싸우거나 화낸다.
잘해주면 나도 잘해준다. 크리스천이 그러면 안되는데 난 나에게 태클 걸면 싸운다.
아무튼 그 사수의 날 무시하는 태도와 말투 때문에 이성의 끈을 놓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버티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음지가 언젠가는 양지가 되듯 그 선배는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사실 강박증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강박증이라고 하기보다는 정직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무원이 돼서 가장 먼저 부딪혔던 부분은 출장 문제였다. 관행적으로 허위출장을 달고 출장을 가지 않으면서 출장비를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일이지만 나에게도 출근하자마자
출장을 달라고 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출장을 가지 않으면 출장을 달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히 이해를 해주는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내가 부딪혀야 할 할 수많은 문제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달은 출장을 한 번도 가지 않아 출장비가 0원 인적이 있었다. 나는 자주 그랬다. 우리 동에 나만 0원인 것이다. 출장비 명세서에 빵원이 적힌 내 이름 옆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나만 정직하거나 고결하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닌다. 오히려 살면서 나는 너무 큰 잘못도 하고 거짓말도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고 싶어 졌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 내 마음이 변화된 것 같다.
첫 출근으로 돌아와서 도무지 몇 달 동안은 서류의 발급 조건, 발급 대상, 법령 등이 외워지지 않아 나머지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미대를 졸업했다. 책 보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 인문학적이고 학문적이고 문과적인 글들의 독해가 아주 어려웠다.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몇 번, 몇십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화나고 당황하고 겁냈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웃고 재밌게 얘기하고 떠들던 민원대 시절이 그립다. 민원인 몰래 먹을 것을 먹던 순간들, 같은 자리에 2년여를 앉아있으면서 정들었던 동네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기억 속 저 멀리 있는 일들을 강박증 크리스천 공무원 생존기에 계속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