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동네 스타벅스에 갔다. 유난히 앳돼 보이는 소녀가 눈에 띄었다. 테이블 위에 책들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수능 공부를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잔이 보이지 않았다. 음료는 시키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철없는 얌체 소녀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 보이는 다른 소녀가 등장했다. 그 여학생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몇 분 뒤에 봉지과자를 사들고 왔다. 음료도 시키지 않은 소녀들은 봉지 과자를 뜯고 바삭 소리를 내며 다시 신나게 떠들어댔다.
원래 있던 친구는 엄마가 동남아시아 계열 사람인 듯한 혼혈아처럼 보였다. 다른 친구는 몸에 딱 달라붙는 노출이 있는 스판 재질의 패션이었다. 걸음걸이와 말투, 태도가 얌전한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친구 같았다. 처음부터 공부를 하고 있던 소녀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듯 보였다. 앉아서 책을 보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공부에 불이 붙어있는 소녀였다. 다만, 친구가 오기 전까지. 공부의 흐름이 끊겨 귀찮을 법한대도 친구에 장단에 맞춰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하긴. 그 나이 때는 의리가 생명이니까.
그 모습을 보는 데 짜증이 났다. 음료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봉지과자를 뜯어먹으면서 떠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영 불편했다.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겠냐마는. 편안해야 할 나만의 토요일 저녁 스타벅스 타임을 방해하는 그 소녀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매장 직원들은 뭐 하나 싶었지만 홀을 돌아다니던 직원들도 그들의 행태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니 여학생들이 음료도 시키지 않고 앉아있는 걸 모르겠는가? 큰 소리 나서 뭐 하겠는가.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닐 텐데.
가끔 스타벅스에 있다 보면 아주 작은 잔에 샘플링한 커피들을 나눠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날도 영어로 된 이름표, 아기자기한 배지들이 달려있는 녹색 앞치마, 캡모자를 쓴 키가 큰 여직원이 플라스틱 쟁반에 앙증맞은 하얀색 잔들을 잔뜩 들고 등장했다. 2층에는 꽤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오길 내심 기대했다. 널찍한 홀을 팽이처럼 빙빙 돌던 여직원은 내가 앉아 있던 자리로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녀들에게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잔 마셔보고 싶었다. 힘든 등산 후에 맛보는 몇 방울의 약숫물처럼 내 혀에 무료 커피 방울이 떨어지지 않은 게 아쉽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 여직원도 소녀들이 괘씸한 듯 무료 음료를 분배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는? 왜 안 줬을까? 나는 분명 커피잔을 시켜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엄연한 손님이란 말이다. 뭔가를 더 시켰어야 했나? 서운함과 분노가 날실과 씨실이 되어 생각을 뒤덮었지만 내 할 일을 하다 보니 금세 풀어져버렸다. 그러다 끝날 시간이 돼서 짐을 챙겨 나왔다. 그때까지도 그 소녀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 저녁에도 스타벅스에 갔다. 그 소녀가 있었고, 또 얼마 뒤에 지난주와 같은 친구가 등장했다. 역시 봉지과자를 사 와서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번에는 초코우유, 딸기우유 같은 외부음료까지 챙겨 왔다. 무슨 배짱일까 싶었다. 직원이 뭐라고 하면 음료 시켜서 먹고 컵은 반납했다고 하면 그만이라는 심보 같았다. 참 편리하게 제멋대로 사는 인생들이구나. 아무리 어려도 최소한의 매너와 양심이 있어야지. 그렇게 철이 없어서 뭐가 되겠냐? 뭐 저따위로 인생을 사나 싶어서 마음속으로 그 소녀들을 무참히 비난했다. 나는 법과 규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앞뒤가 꽉 막힌 원칙주의자적인 성향이 있다. 그래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특히 도서관에서 무소음 키보드를 써야 하는 규정이 있는데도, 라흐마니노프교향곡 3번을 치는 듯, 일반 키보드를 두들겨 재껴 대는 인간들에게는 가히 가공할 만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소녀들의 철없는 행동들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봉지 과자 같은 외부음식을 뜯어먹는 이기적인 행위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었다. 심술과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낀 채 관심을 끄고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스타벅스를 나왔고 소녀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집에 와서 씻으면서 거울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못난 어른이다....'
그 소녀들의 사정이 어떨지 생각해봤을까? 요즘 중고생들은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한다. 그런데 어떤 사정으로 스타벅스에 와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일 수 도 있고, 집안 분위기 때문에 집에서 공부할 수 없을 수도 있고, 학교 밖 청소년들일 수도 있다. 그 친구들이 어떤 형편과 사정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잘못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소녀들을 비난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만약 내가 그때 스타벅스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를 두 잔 사서 그 소녀들에게 선물로 줬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말이다. 그 소녀들은 눈치도 안 보고 편한 마음으로 토요일 저녁시간을 즐겼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는 따뜻한 어른들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소녀들이 정당하게 지불한 음료를 마시게 되었으니 더 이상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 큰돈 들지 않고 모두가 즐겁고 기분 좋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일주일이 빨리 지나서 토요일이 오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고 토요일, 비슷한 시간에 스타벅스에 갔지만 그 친구들을 볼 수 없었다. 그 후에도 보지 못했다. 나의 비밀 프로젝트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신기하게도 두 번밖에 못 본 그 친구들이 몇 달이 지났는데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조금만 더 어른스럽고 따뜻하고 지혜로웠다면 소녀들과 나의 마음을 어떤 커피보다도 더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마무리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첫 소녀에게 붙었던 공부의 불씨가 그 친구에게도 붙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공부에 불이 붙었으면.
끝으로, 그 스타벅스 소녀들이 좋은 대학에 붙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