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생각정리기술 복주환 작가
도서관을 장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99%가 정적인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잠을 잔다. 정신병동에 있는 듯 한 느낌도 든다. 고개를 30도 정도 숙이고 느릿느릿 걷고,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고, 표정은 굳어있다. 얼굴빛에서 광택이 전혀 안 난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데 눈빛이 초롱초롱하지 않다. 에너제틱해 보이는 사람들이 없다. 왜 그럴까?
고시낭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수년, 수 십 년 동안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도서관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마지막 잎새의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버텨내지만 희망적인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 모든 시험은 2번을 준비해서 안되면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었다. 2번 해서 안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빨리 포기하고 제 살길 찾아가는 것도 지혜로운 거니까. 그런데 또 그렇지도 않다. 3수, 4수해서 꿈을 이룬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웬만해선 볼 수 없는 캐릭터,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남자가 등장했다. 도서관 강연장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초스피드로 말하고, 박진감 넘치고 에너제틱하고 열정적인 말빨의 강연을 펼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베스트셀러 <생각정리기술>의 저자 복주환 작가였다. 괜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구나, 수많은 강연을 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복주환 작가는 20대 때 이미 10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네이버로 조회해 보니 현재는 3000권의 책을 읽었다고 나온다. 20대 때 천권의 책을 읽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생각정리 기술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게 아니라,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뉴런과 시냅스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방대량 데이터베이스가 볼 수 없고 느낄 순 없지만 뇌 속에 구조화되고 쌓여서, 강의와 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LEADER IS READER라는 말이 새삼 다시 느껴졌다. 타인 앞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SPEAKER가 되기 위해서 먼저 LISTENER가 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도 저래도 책을 많이 읽는 게 확실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강연 중에 호기심에 대한 내용이 무척 공감이 되었다. 뭐든지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면 그 답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정리된 내용의 답만 달달 외우려는 단순무식한 공부로는, 기억의 유통기한이 극도로 짧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기억을 오래 갖고 있을까? 망각의 고뇌를 겪는 인간을 위한 최고의 솔루션은 무엇일까? 바로 호기심이라는 황금열쇠를 선물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주도적 공부, 메타인지 공부, 지속가능한 공부의 출발은 모두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호기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공부는 김 빠진 콜라처럼 우리를 맥 빠지게 한다. 반면, 호기심과 궁금증은 우리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몰입과 집중의 소용돌이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도서관 사람들의 눈빛이 빛나지 않는 건 호기심과 궁금증 없이 정보를 무작정 때려 넣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될까? 사랑이란 단어를 예를 들었다. 사랑을 생각 사(思), 헤아릴 량(量)으로 해석해서, 생각의 량이 많다는 뜻의 한자 단어 사량(思量)이 될 수 있고, 사량(思量)이 변해서 사랑, 생각을 많은 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기심을 갖고 궁금증을 갖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중에서도 호기심의 핵심 키워드는 WHY! 왜!
나이가 들수록 머리도 빠지고 근육도 빠지고 <왜?>라는 질문도 빠진다. 모든 일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경험과 관행의 타성에 젖어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 신체적 노화가 젊음의 상징인 근육과 검은 머리털의 소멸이라면 정신적 노화는 호기심과 궁금증의 소멸은 아닐까. 반대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지하고 발달시킨다면 그토록 바라는 정신적 회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주름과 걱정을 늘릴 게 아니라 즐거운 호기심을 늘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도서관 장기이용 멤버들은 서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마주친다. 열람실에서, 화장실에서, 휴게소에서, 복도에서, 서가에서, 계단에서, 마치 서로 아는 척을 하면 안 되는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들처럼 서로를 모른척한다.
하지만 우린 함께 공간을 공유하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신기한 건 함께 있으니 닮아간다는 것이다. 서로의 모습이 신기하게 닮아간다. 점점 패션에 관심이 없어지고 힘이 없고 축 쳐 저서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한다. 광합성을 하듯 일광욕을 하며 태양볕을 쬔다. 우리에게 태양볕보다 더 필요한 건 무엇일까?
노르웨이에서 잡은 연어를 장거리로 이동시킬 때 철갑상어를 몇 마리 함께 풀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천적인 철갑상어를 필사적으로 피하느라 연어들이 아주 싱싱한 상태로 목적지까지 이동한다고 들었다. 몇 마리의 연어가 철갑상어의 밥이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수십, 수백 마리의 연어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때로는 천적이 필요하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시간이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평화롭고 고요한 도서관에 철갑상어 같은 깡패들을 풀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고통은 두려운 것이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니 보다 혁신적이고 영리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핵심은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 목적이다. 연어가 자기들끼리 아침, 점심, 저녁 열심히 운동하고 다이어트하고 체력단련해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철갑상어도 필요 없을 것이다. 에너제틱하게 살아있는 게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고차원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복주환 작가님이 알려준 황금열쇠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 찬 도서관을 생각해 보라. 핵융합을 하며 자가 발전하는 태양처럼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되는 지적 발전소가 될 것이다. 조금 오버를 해서 호기심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넘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멋져질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호기심이다.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을 신경 쓸게 아니라 우리에겐 호기심 충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ps. 호기심 [好奇心]
새롭거나 신기한 것에 끌리는 마음
익순한 것을 새롭게 평범한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능력을 통찰력, 인사이트라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