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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Oct 15. 2024

안목의 정욕

유튜브의 품 안에 안겨 도파민에 취해 헤롱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단물이 다 빠져 고무맛이 나는 오래된 껌을 씹는 듯한 뻑뻑한 지루함이 밀려왔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다리 근육도 빠지고 뱃살도 날로 불어나는 요즘이었다.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게 뭘까?'


문득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들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와 인스타를 쳐-보고, 인터넷 서핑을 쳐-하고, SNS를 탐닉하고 염탐했던 시간들이 99% 쓰레기같이 여겨졌다. 다이아몬드보다 귀하디 귀한 내 시간에 똥을 쳐-바른 듯한 후회가 밀려왔다. 


'왜 인간은 자기 파멸적일까? 왜 후회할 짓을 할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나의 어리석음에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손가락은 스마트폰 어플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잠들기 전까지 내 두 팔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스탠드가 된다. 뇌에는 도파민을, 눈에는 블루스크린을 충전하느라 무기력의 늪에 빨려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미련한 나를 보면 내 인생의 비참한 결말이 예상되어 공포영화를 보는 듯 떨릴 때가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없애버리면 될까? 스마트폰이 없었을 땐 날 유혹했던 건 뭘까? 인터넷 서핑이었다. PC 통신, 싸이월드, 인터넷 게임에 빠졌고 하루 종일 인터넷 쇼핑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 옷을 살까? 저 옷을 살까?'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잘 생긴 얼굴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좋은 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패션으로 승부를 볼 생각에 인터넷 쇼핑에 사활을 걸었었다. 종종 옷을 잘 입는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남아있는 건 옷장에 쌓인 싸구려 옷들밖에 없었다. 개수작에 가까운 겉치레였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든다. 하..... 인터넷 서핑, 쇼핑, 게임을 하면서 날린 시간을 생각하면..... 도박에 빠져 수억 원의 재산을 탕진한 것과 마찬가지의 기회비용을 날려 버린 것과 같다. 


더 과거로 내려가서 인터넷이 없었을 때를 돌이켜보자. 그때는 텔레비전과 만화책, 비디오 영화와 게임이 내 인생의 왕좌에 앉아서 나를 다스렸다. 인생의 시간을 봉지 과자처럼 게걸스럽게 입안에 쑤셔 넣고 남은 건 과자 부스러기 같은 기억들과 추억들 뿐인 것 같다.   



나의 인생을 관통하며 후회들로 가득 채우는 원흉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모두 즉각적으로 시각을 통해 쾌감을 선사하는 안목의 정욕들이었다. 스마트폰 유튜브, 인스타, 인터넷, 쇼핑, 영화, 만화, 게임, 모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일들이었다. 말초신경을 간지럽히며 눈을 호리는 마력에 맥없이 무너져서 질질 끌려다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목의 정욕에 번번이 무너질까?'


인류 최초로 안목의 정욕의 유혹에 넘어간 이야기를 살펴보자. 성경 창세기에는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뱀의 유혹의 빠져 선악과를 먹는 내용이 나온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뱀은 눈이 밝아진다고 유혹한다. 하와는 선악과를 보자 뱀의 거짓말과 유혹의 소용돌이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만약 그때 하와가 뱀이 보라는 선악과를 보지 않고 눈을 가린 채, 에덴동산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왔다면 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우린 모두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악과를 눈으로 보는 것이 기폭제가 되어 인간의 원죄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안목의 정욕은 인간을 유혹하는 강력한 도구다. 인간을 유혹하는 매뉴얼이 있다면 1장 1절에 이렇게 적혀 있을 것 같다.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눈을 호리는 것이다!"


이를 캐치프레이즈로 시대에 따라 전략적으로 인간들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이 문장을 활용하여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유혹의 속삭임을 8글자로 말해보겠다.  


"유튜브 5분만 볼까?"


이 속삭임에 수십억 명이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이후 다음의 미래는 어떨까? 안목의 정욕을 이용해서 우리를 어떻게 유혹할까? 영상이 스마트폰을 튀어나와 홀로그램처럼 3차원 입체영상으로 인간의 시각을 휘어잡을 것이다. 연예인 뺨치게 예쁘고 잘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와서 인간의 마음을 쏙 빼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목의 정욕을 이용해서 유혹하라는 중심 콘셉트만 잘 잡고 있으면 응용은 무한대로 가능하다. 


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특히 예쁜 여자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은 여자들을 몇 번 사귀고 인생이 엉망이 된 적이 여러 번 있다. 지나고 보면 어디에 홀린 건지, 도무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 모두 시각의 유혹,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헉! 저 여자 몸매가 아찔하게 날씬하다....!'

'아! 저 여자 가슴이 탐스럽게 예쁘다....!'

'와! 저 여자 직업도 좋고 똑똑하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해 줄 것 같은 여자들에게 홀랑 빠져서 고백을 하고 멍청하게 차이거나 어쩌다 사귀더라도 진흙탕처럼 질퍽질퍽한 연애를 질질 끌다가 헤어지곤 했다. 돌이켜보면 시각적인 매력의 미끼에 걸려 자기 인생이 찢겨나가는지도 모르고 허우적대다 죽기 직전에 탈출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똑같은 종류의 미끼에 걸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언의 비극적 주인공이었다. 이처럼 내 인생을 유혹하는 파멸의 키워드는 눈을 호리는 SOMETHING, 안목의 정욕이었다. 



하.....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닐 수 도 없고, 눈알을 뽑을 수도 없다. 마시멜로 실험 같은 눈앞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가 'OUT OF SIGHT'가 있다. 유혹의 대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유혹의 대상이 되는 SOMETHING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이 최선이다. 나에게 적용한다면 스마트폰, 인터넷과 멀어지고 여자의 외모만을 봐서는 안된다.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안목의 정욕이 인생의 보이지 않는 왕이 되어 우리를 노예삼도록 해서는 안된다.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을 자기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는 안목의 정욕의 유혹을 이겨냈을 때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미래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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