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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Oct 14. 2024

MZ 공무원 & 구청장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인 시장, 군수, 구청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구청장 선거가 도입되었고 구청장은 시민들의 투표로 임명하게 된 것이다. 예전이야 빨갱이와 NONE 빨갱이, 이분법적으로 정치가 이뤄지고 선거를 했겠지만,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치인들은 더 이상 색깔이 아닌 실력, 인성, 노선, 성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로 평가를 받고 선출된다. 한마디로 예전처럼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설렁설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 말은 구청장님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내가 있던 자치구의 구청장님은 슈퍼맨처럼 열정이 있는 분이셨다. 횡단보도, 교통신호 위치 같은 동네의 구석구석을 주민센터 직원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셔서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훌륭하신 구청장님이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구청장님이 최선을 다해 일을 하시니 시민들은 얼마나 구청장님을 신뢰하고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그 밑에 있는 공무원들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사회가 복잡하게 발전할수록 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세분화된다. 그럼 그 법을 처리하는 공무원의 본연의 담당 업무도 점점 어려워진다. 공무원들은 자기 할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본인업무 외에 기본 세팅되어 있는 EXTRA 업무가 의외로 굉장히 많다. 각종 선거, 국가 행사부터 동네마다 특화된 마을 축제, 직능 단체 관리, 사회복지 대상자 관리부터 어떤 자치구는 새벽 청소를 만들어서 공무원들이 아침부터 나와서 동네를 청소를 해야 하는 것처럼 별별 일들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을 더럽게 많이 시킨다. 왜냐면 구청장님께서 열심히 일을 하셔야 다음에도 구청장이 될 수 있고, 더 잘하면 국회의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편리하도록, 시민들의 불만,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구청장이 돼야 되기 때문이다. 그건 바람직하고 좋다. 그런데 그 일을 다 누가 하느냐 이거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모두 공무원이 한다. 구청장이 지시를 내리면 그 지시가 눈덩이가 되어서 일선에서 일하는 8, 9급들에게 산더미처럼 쌓여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영리한 시민들은 담당공무원과 상대하지 않는다. <구청장에게 바란다!>처럼 시민과 구청장이 다이렉트로 연결된 창구를 통해 민원을 넣으면, 구청장은 웬만하면 들어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소문'이기 때문이다. 안 좋은 소문이 한번 퍼지면 끝장이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어떤 바람이 부느냐, 어떤 소문이 부느냐에 따라 정치생명이 걸려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요즘엔 인스타, 유튜브, 트위터처럼 SNS 시대에 부정적인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더 심각하게 뉴스 같은 매스컴에라도 한번 터지면 정치생명은 끝난다. 그래서 이미지 메이킹의 사활을 거는 것이다. 구청에서 보내주는 광고전단지에 보면 구청장 사진들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분들은 연예인, 정치인, 전문인, 공무원을 융합한 분들이라고 보면 된다. 많이 눈에 띄어야 하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열심히 한 일을 티를 내야 한다. 나는 구청장님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공직자가 더- 더- 최선을 다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애민의 정신과 자아실현을 위한 열심은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다만, 그로 인해 생기는 MZ 공무원 줄퇴사라는 현실의 후폭풍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먼저 공무원 초기 급여에 경악한다. 2차 함수그래프처럼 공무원은 초반 급여가 아주 낮다. 그런데 일은 더럽게 많이 시킨다. '그래 참고하자. 2차 함수는 조금만 참으면 가파른 상승곡선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잘 참으면 공무원 연금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퇴직 전에 1년 공로연수도 있고, 육아휴직, 법정휴가, 보수, 급여, 등 여러 메리트가 있으니까 참아보자.'

그랬지만 그런 메리트를 모두 누리려면 10년 이상을 다녀야 한다. 15년은 해야 고생한 만큼 올림픽 면류관을 쓸 수 있게 되는데 공무원 연금은 박살이 나고 있다. '10년 동안 버틸 수 있을까? 버티는 게 맞는 걸까?' 구청장님은 바뀔 거고, 바뀐 구청장님들은 더욱- 더욱- 일을 열심히 할 것이고, 더 많은 행사를 만들 것이고, 더 일찍 일어나서 더 늦게까지 일을 하실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 더-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할 것이다. 왜냐면 다음에도 구청장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공무원들 중에 그런 마음으로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과거 공무원에 대한 개념은 무사안일주의가 대표적이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맹숭맹숭해야 하는 조직, 일 잘하면 일을 더 시키니까 적당히 해야 하는 조직, 새로운 일을 왜 만드냐고 핀잔을 듣기에 했던 일만 해야 하는 조직, 놀아도 짤리지는 않는 조직, 한마디로 평범하게 중간정도만 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MZ 세대는 그런 세대가 아니다. CREATIVE, PASSION, UNIQUE, IDEA의 세대에게 과거의 구태의연한 매뉴얼을 장착하니 얼마나 힘들고 지치겠는가?  90년 대생들보다 더 똑똑해지고 영리해지는 2000년대 생들이 공무원이 돼서 줄줄이 퇴사할 건 당연한 일이다.


조직의 리더는 열정의 불꽃이 파바박 튀는데, 조직의 구성원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현실. 몇 번은 참고 따라가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 이제 그만.....' 결국 떠난다.   


사실 더 문제는 구청장과 MZ 공무원 직원들 사이에 있는 기존 공무원 선배들이다. 조금 세게 얘기해 보겠다. 일이 힘들면 사람들이라도 좋으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 이 사람들과 함께 라면 고진감래의 정신으로 버텨보자. 이렇게 좋은 선배들이 있으니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선배들이 따뜻하게 애정으로 챙겨주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승진' 때문이다. 공무원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승진'이다. 공무원들은 모두 '승진'을 하고 싶어 한다. 승진을 해야 월급도 많이 받고, 월급이 오르면 연금도 오르고, 공무원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승진하나만 보고 참고 버티기 때문에 밑에 사람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구청장님을 탑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충성해야 '승진'을 할 수 있다. 위에 사람들 비위 맞추기도 힘든데 어떻게 MZ 마음을 챙기겠는가?


결국 8급, 9급은 최소한의 급여를 받아가며 사랑과 관심은 커녕 위로조차도 못 받고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눈두덩이 업무들을 쳐내야 하는 인공지능 기계로 살아야 했기에 공직을 떠나는 것이다.



MZ 공무원 줄퇴사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청장을 민선이 아닌 관선으로 뽑으면 된다. 선거가 아닌 정부에서 임명해서 내려보내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공무원 업무강도는 최소 30% 줄어들 것으로 본다. 구청장들은 시민을 보지 않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정부 고위 관료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선거제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은 - 없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 가속화될 것이다. 구청장님들은 시민들에게 더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션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남자친구, 남편이 되어 자치구를 아끼고 보살펴 주실 것이다. 누구와 함께. 우리 공무원들과 함께. 버티고 견디는 인내의 공무원들과 함께.


그나마 AI가 개발되고 있고 무인민원발급기가 서류발급을 많이 해주고 있는 건 발전이라고 본다. 하지만 향후 10년 정도 로봇이 상용화될 때까지는 날이 갈수록 공무원들은 바빠지고 할 일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있다. 말했듯 열정 가득한 구청장님과 MZ 공무원들 사이에 계신 공무원 선배님들이 완충작용을 해주시고 어리고 똑똑한 MZ 공무원들을 보살펴준다면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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