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굶고 일본에서 먹은 라멘
일본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한국에서 하루
굶고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오사카에서 하루를 더, 교토에서 하루를 더, 그 다음날 아침도 굶으며 총 10끼를 물만 먹었다. 그렇게 일본 여행 3일 차에 첫끼를 먹기 전에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다녔던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시샤 대학으로 나오니 태양이 뜨거웠다. 대학의 작은 공간에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새워져 있었다. 기념비에 새겨진 서시를 읽고 벤치에 앉은 후에 작은 도서관으로 가서 큐티를 하고 드디어 밥을 먹으러 갔다. 큐티는 Quiet time 성경묵상을 의미한다.
10끼를 물만 먹고 나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라멘을 먹기로 했다. 도시샤 대학 근처에 여러 라멘집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인기 있다는 라멘집을 찾아갔다. 가게 앞에는 음식을 주문하는 자판기가 세워져 있었고, 자리를 안내하는 직원이 주문을 도와주었다. 추천 메뉴를 물어봤는데 잠시 고민하던 직원이 푸짐하게 생긴 라멘을 추천해 주었다. 그 메뉴를 ‘대’자로 주문하고 공깃밥도 더 주문했다. 10끼를 굶었으니 배가 얼마나 고팠겠는가? 한번 제대로 먹어보겠다는 다짐과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드디어 토핑으로 푸짐하게 가득찬 라멘이 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호로록 먹었다. 진하디 진한 육수국물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은 라멘의 면보다 국물에 온 정성을 쏟는다고 하지 않는가? 특유의 향내와 사골을 우려낸 짭짜름하고 묘한 담백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니 메마른 잔디밭에 소나기가 내리듯 영양분이 온몸으로 찌릿하게 전해지는 진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연속해서 세 숟가락을 떠먹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국물이 너무 짜서 그런가?‘
라멘 위에 올려져 있는 고기, 김, 달걀, 야채들을 젓가락으로 건져 먹어서 몸을 달래주었지만 그럴수록 두통은 심해지고 현기증과 울렁거림이 심해졌다. 대자를 시켰기 때문에 면도 엄청나게 들어있었는데 면은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른 채 올라와있는 토핑이라도 최선을 다해 입안으로 때려 넣으려고 노력했다.
옆 테이블의 다른 일본 손님들은 그들만의 유쾌한 수다를 떨며 후루루루룩 소리를 라멘타임을 즐기는데 먹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놀랐다.
‘저들에게는 이 국물이 안 짠가?’
잠시 다른 얘기로 일본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일본인들은 상당히 유쾌하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정이 많은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일본 사람들은 라멘을 엄청나게 빨리 먹는구나....’
나보다 먼저 온 손님, 같이 온 손님, 나중 온 손님들까지 아주 빨리 라멘을 해치우고 곧바로 퇴장했는데, 아마 맛집이라서 회전율을 위해 그러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점심시간을 지난 후라서 그런가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속도가 전혀 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마치 뷔페에서 12 접시를 먹고 배가 터질 듯한 사람을 다시 라멘 집에 데려가서 라멘 대자를 또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먹을 걸로 괴롭히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앞에 있는 라멘이 곤욕스러웠다. 시간이 흐르자 그릇에 가득 남겨진 면들이 국물을 모두 흡수해서 국물이 보이지 않자 국물을 더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일본인 요리사는 국물이 처음 맛과 다를 수 있다는 디테일한 설명과 함께 친절하게 리필을 해주었는데, 리필받은 국물을 먹을수록 몸은 더 안 좋아졌다. 결국 라면 먹기를 포기했다.
나는 연거푸 시원한 냉수를 마시기 시작했고 심지어 추가 주문한 공깃밥에 물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차가운 맹물과 흰쌀밥의 탄수화물이 들어가자 그제야 몸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도시샤 대학에서 최고 인기 있는 라멘집에 가서 호기롭게 ‘대’자 라면을 시키고선 3분의 2를 남겨놓고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요리사와 직원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남은 라멘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몸살이 걸린 것처럼, 멀미를 하는 것처럼 떨리고 어지럽던 상태가 물에 말아먹은 쌀밥의 힘으로 약간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라멘을 남겨서 미안하다고 하며 멋쩍은 미소와 함께 가득 담긴 그릇을 도로 반납했다. 일본인 직원은 ‘No problem’이라는 말과 함께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내가 가게를 떠난 후 직원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가게에 나와서 전경사진을 찍고 거리를 걸었다.
‘10끼를 굶고 갑자기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나?’
조금 더 부드러운 라멘을 먹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일본 답게 주위에 라멘집이 많았고 두 번째로 추천해 준 부드럽고 크리미 한 라멘집을 갔었어야 했나 싶었다. 상태가 빨리 호전되지 않아 챗GPT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어봤다.
GPT는 나를 아주 걱정하는 듯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10끼를 금식하면 몸은 저삼투압 상태가 되며 전해질 농도도 낮고 당분도 낮아지는데 그때 갑자기 라멘처럼 기름지고 짠 음식을 먹으면 몸의 삼투압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서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민감해진 위장 소화기가 큰 부담을 느낀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금식 후에는 죽이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지금은 얼른 누워서 쉬라고 이야기해 줬다.
‘아, 그래서 그렇게 어지러웠던 거구나.’
문제의 라멘을 먹고 사실 라면이 문제는 아니지만 3시간 정도 지나서야 어느 정도 몸이 안정이 되었다. 금식기도를 하고 나서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으로 위장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옛말이 틀린 말이 없구나.’
그때 절대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던 그 라멘의 국물맛이 생각난다. 짭짜름하고 담백하고 구수한 깊은 국물맛, 며칠 금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장의 컨디션이 좋았을 때 간다면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에 교토 도시샤 대학 앞 그 라멘 집에 가서 그 라멘을 먹을 날이 또 올지 모르겠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는 ‘소’자를 시켜서 먹고 컨디션을 조절하며 다른 메뉴도 먹어보고 싶다.
일본여행을 하면서 굶었던 건 크리스천으로 금식기도를 한 것이었다. 여행중에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작은 금식기도가 일본에 예수님의 복음이 꽃피우는 기도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