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성북구에는 아직도 미아리텍사스촌이라는 사창가가 있다. 성북구청 소속 공무원이었을 때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주민센터가 돈암1동 주민센터였다. 미아리텍사스촌 바로 앞에 있는 주민센터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면 텍사스촌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3분 정도 걸으면 주민센터가 나왔다.
성북구를 가로지르는 내부순환 고가도로 밑에 있기 때문에 텍사스촌은 언제나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늘 6시 칼퇴근을 했고 가끔 야근을 하게 되더라도 텍사스촌 입구의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지판과 칸막이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기에 내부를 보기가 어려웠다.
오후가 되면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삐끼처럼 호객행위를 하며 서성대곤 했다. 텍사스촌은 지하철 4호선 길음역 바로 앞에 있는데 어느 날 길음역 10번 출구 앞에 있을 때였다. 번데기를 파는 노점 앞에 어떤 여자가 번데기를 사고 있었다. 다리가 심하게 오자로 벌어진 여자였다. 강아지를 안고 있었고, 거칠고 허스키한 높은 목소리로 털털하게 대화하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이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텍사스촌의 여자 같았다.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변형된 다리, 변장 같은 화장에 인위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돈암1동 주민센터로 발령을 받았을 때 두려운 마음이 들었었다.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자가 주민센터에 오면 어떻게 하지?’ 듣기로 그녀들은 보건소에서 주기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는다고 들었다. 만약 성병 같은 병에 걸린 여자가 업무를 보는 나에게 기침을 하거나 병균을 옮기면 어떻게 하나 두려웠다. 하지만 6개월 정도 돈암1동에서 근무하면서 그런 두려움을 느낄 만한 여자를 본 적은 없었다.
그 미아리텍사스촌이 강제철거를 할 계획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일했던 일터를 지키기 위해 텍사스촌 여인들이 성북구청에서 시위를 한다고 한다. 점포를 소유한 업주들은 충분한 토지 보상을 받지만 40대, 50대가 돼버린 여인들은 갈 곳도 없이 거리로 쫓겨나는 거리의 여인들이 돼버릴 처지가 된 것이다. 구청은 그녀들이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도록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청량리에도 사창가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청량리역을 많이 다녔다. 기차를 타고 외할머니댁시골을 가기도 했고, 대학시절 춘천으로 통학을 했을 때도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다녔다. 청량리역을 둘러서 거대한 사창가가 있었다. 그래서 청량리역을 가게 되면 사창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정육점의 핑크빛 형광등을 켜놓은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가게 안은 텅 비어있고 상품은 없고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있었다.
그 여성들 중에 기억나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대낮에 창이 투명한 가게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내가 본 그녀의 눈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어떤 짐승의 눈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전혀 생각을 알 수 없는 깊은 검은 무색 같은 눈동자였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그녀의 눈과 표정이 비슷한 존재를 본 적이 있다. 성남의 모란시장에 갔었는데 거대한 개 수십, 수백 마리가 철장에 갇혀서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종들의 개였다. 틀에 넣고 찍어낸 것처럼 똑같이 생긴 커다란 개였다. 무슨
개들이 이렇게 많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보신탕을 위해 사육된 개였다. 횟집에서 횟감을 고르듯 보신탕 손님들이 가게 앞 철장에 갇힌 개들을 고르고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개적으로 개철장을 줄지어 늘어놓았겠는가. 아니면 자기 집은 이런 개들로 보신탕을 만든다는 홍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봤던 개들의 눈동자와 표정이 그 여성의 눈과 표정이었다. 둘은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비참함 조차 느낄 수 없는 허무와 공허한 눈과 표정이었다.
인간은 지성과 감정, 의지가 육체와 함께 있다. 그 여자는 인간에게 지정의를 빼버린 육체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검은색 숯으로 하얀색 도화지 위에 덕지덕지 덧칠한 듯한 그녀의 눈동자와 굳어져버린 표정.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만을 갖고 있는 인간의 모습.
그녀도 갓난아기로 태어나 사랑스러운 세 살 여자 아이였을 테고, 세상이 온통 궁금증으로 가득 찬 분홍색 예쁜 원피스를 입고 앙증맞은 핑크빛 운동화를 신었을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그런 꼬마 아가씨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망가져버려 그렇게 돼버린 것일까? 무엇이, 누가, 왜; 파란 하늘처럼 빛나는 어린 여자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잿더미로 검게 칠해버린 것일까.
성경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자신이 창녀보다 의롭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문제가 있는 크리스천이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에 어느 누구도 타인을 정죄할 수 없고 스스로를 타인보다 낫다고 여길 수 없다. 죄인이 다른 죄인을 정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크리스천은 언제나 죄인인 자신의 추악함을 직면하기에 낮아지고 낮아져서 타인을 정죄할 교만은 사라진다.
그럼에는 나는 그녀들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인가 자문해보곤 한다. 가시덤불처럼 얽히고설켜서 뿌리내린 교만은 스스로를 타인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크리스천은 그래서는 안된다. 우린 모두 아무 소망이 없는 죄인이며,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믿음뿐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나의 눈빛은 어떤가? 그녀들이 보는 내 눈빛과 표정은 어떤가?
그녀들을 볼 때 내 눈과 마음이 더 선한 빛을 비춰주고 싶다. 출구가 없는 어둠의 동굴에 갇혀버린 그녀들에게 파란 하늘이 보이는 인생의 탈출구가 보였으면 좋겠다. 그 빛의 길을 따라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예쁜 꽃들과 하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푸른 풀밭에 누워 포근한 구름들을 바라보는 인생이 펼쳐지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 빛과 길이 예수님이길.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이길 기도한다.
GOD BLESS YOU and
GOD LOVE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