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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21. 2020

새로운 병원에 가기 전 날

섭식장애, 우울증 그리고 양극성 장애

두 달만에 글을 쓰러 왔다. 글을 쓰겠다 마음 먹은 지금도 과연 내가 이 글을 끝마칠 수 있을 지 없을 지 잘 모르겠다. 근래 들어 글을 쓰고 싶어 자리에 앉아도 무엇을 써야 할 지 몰라 절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니 마음 속 혼란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쏟아 내지 않으면 이름 모를 감정들이 몸 속에 녹아 들어 나를 더 병들게 하 것 같아서 뭐라도 써보려고 용기를 내 본다.


내일은 새로운 병원에 가는 날이다.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된 것을 고려해 오후 시간으로 예약했다. 침묵 속에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서 하루 종일 드라마를 틀어 놓고 영화를 틀어 놓는다. 당연히 잠에 들기 쉽지 않다. 눈을 감고 있어도 온갖 소음이 생생히 그려진다. 내가 만들어 낸 환영들과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또 하나의 세계 속에 나를 가둔다. 그 세계에는 아침도 밤도 없어서 하루종일 움직여야 한다. 아주 잠깐 잠에 들어도 금세 깨어나 애매한 현실을 마주한다. 실질적으로 하는 건 없는데 머릿 속은 풀 가동 중이다. 나를 위해 하는 일, 해야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중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가고 일은 늘어난다. 나는 그것들을 죽어라 미루고 있다.


2주치 약을 털어 넣고 나서도 꾸역 꾸역 대학원 1학기 종강을 맞이 했다. 시험도 쳤고 과제도 했다. 중간 중간 끼여있는 활동도 빼먹지 않고 참여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병원에 가지 않은 이유는 '귀찮아서'가 제일 크지만 한편으론 뭐라도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라는 방임적인 태도가 가장 문제였던 것 같다. 학기가 끝난 뒤, 말 그대로 모든 걸 놓아 버린 사람처럼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다. 대학원생의 방학은 방학이 아니라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보려고 했지만 몸과 마음은 완강히 거부했다. 차라리 울고 나면 이 썩어빠진 감정들이 처리될까 싶어 억지로 눈물을 짜내기도 했지만 이젠 그것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학원 동기 선생님의 제안으로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심리검사를 했다. 체크하면서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해석 상담을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럴거면 애초에 하지를 말았어야지 - 하며 일주일 뒤, 다시 학교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가관이었다. 결과가 나의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해석해주시는 선생님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무리가 있구나, 선생님은 약물 치료와 상담을 동시에 진행하길 원하셨지만 힘들다면 둘 중 하나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상담? 아직 상담을 받을 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데.....쉽게 '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약물 치료는 받겠다고 약속했다. 안 그래도 요즘은 심리적인 문제가 마음을 넘어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이 상태로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신 거예요?" 라고 물으셨다. 나는 딱히 일상생활이라고 할 만한 걸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학교라도 안 다니면 매일 매일 죽는 것만 생각할 것 같아서 주어지는 과제나 일들을 꾸역 꾸여 하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사람들은 쉬어야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어떻게 쉬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쉼이 내게 가당키나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슬프다고 하셨다.


 우울이 내 인생에 깊이 들어온 건 내가 섭식장애를 극복할 때즈음이었다. 섭식장애에서 회복되고 나면 절로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토를 하는 게 너무 죄스럽고 힘들었으니 그걸 그만두면 내 인생도 그냥 저냥 평범해질 줄 알았다.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게 특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상하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회복과정 중에 커팅 자해를 시작했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아주 깊이 죽음과 자살을 생각했다. "너는 토하려고 사니" 엄마가 했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취업도 하고 유튜브 활동도 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되었다면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하는 지 묻고 싶다. 아니 묻기 전에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겠지. 여튼 그런 상태로 4년을 흘려 보냈다. 4년동안 좋아지다 나빠지다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내 상태가 나도 너무나 진절머리가 나는데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질릴까?

이젠 힘들다, 아프다 말하기도 미안하다.

예전엔 꾸며내기라도 했지, 이젠 그것도 못할 만큼 지쳐 버렸다. 병원에 가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만큼.

달라지는 게 있을까?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지고 싶을까?

의문만 늘어날 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죽지 못할 것이다. 정말 죽을 거였으면 진작에 죽었을테니까. 내가 만든 지옥에서 나는 평생 불구덩이 속을 헤집고 살아야겠구나 -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죽지 못해서 사는데 남들을 괴롭히며 살고 있다. 내 인생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스물 아홉의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라고 할 수는 있나? 최악이다.


 근데 왜 또 병원을 가냐고? 모르겠다. 마지막 희망인건지 발악인건지 원래 다니던 병원보다 조금 더 가까운 병원을 열심히 찾아 진료 예약을 잡았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면...뭔가 다른 방향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상담 선생님이랑 다른 건 몰라도 약물 치료는 하기로 했으니까 (상담샘이 같은 학과여서...책임감이 2배인 것도 있고) 몸이 너무 지쳐서 하나에 집중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다. 약의 힘을 빌리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냥 눈 뜨고 있는 게 너무 괴롭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일 병원에 다녀와서 어땠는 지 꼭 일기로 남겨야지.

버티는 삶 그 이상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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