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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05. 2020

그래서 최종 목표는 뭐예요? 상담사가 되는 것?

최종도 목표도 없습니다.

내일은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섭식장애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하게 된 후부터 깨작깨작 가끔가끔 ㅎㅎ 하고 있는데, 여전히 신기하고 두렵다. 내 말들이 온전히 그들에게 가 닿을까 생각하면 무섭다. 하지만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내가 선택한 길이잖아. 내가 시작한 일이잖아. 지금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어떻게든 답해야 한다. 내 안에 무엇이 있지? 지금의 나는 지금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사실 '지금'을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산다. 정말이지 그냥 산다는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구나.


"진솔 씨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본인의 센터를 차리는 것? 아니면 어떤 곳에 소속된 상담사가 되는 것?"

 

 밥을 먹으려고 기숙사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일 인터뷰할 매체에서 전화가 왔다. 밥 먹을 땐 온전히 밥만 생각하고 싶은데... 받지 말까? 하다가 어차피 다시 전화해야 될 텐데 싶어서 받았다. 간단히 내일 일정을 알려 주셨고 이만하면 됐지 싶을 때, 개인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먹고 토하던 시절과 관련한 사진이나 기록이 있냐고 물었다. 사진이나 기록이라.... 치과 기록이야 치과에 가면 있을 테고 사진은 글쎄, 난 섭식장애를 보이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그때를 그리워하는 게 싫어서 몸이 나오는 사진은 죄다 지워버렸기 때문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치과기록도 웬만하면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왜냐고? 내가 아무리 나와 우리를 위해서 나의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지만 내 어금니와 앞니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전 국민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다. 그게 꼭 필요하다면 다시 한번 생각이야 해보겠지만 그게 없어서 내 병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굳이 이 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나 싶다. 나는 10년 넘게 먹고 토하며 살았고 누구보다 그 피폐한 삶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다. 굳이 보이는 것들을 앞에 세우고 싶지 않다. 이것도 고집인가, 억지인가, 핑계인가. 이게 무엇이든 지금은 이 마음이 전부다. 과거는 과거로 두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시기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나니 머리가 스을 아팠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는지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은 말 그대로 비수가 되어 꽂혔다. 사실 비수가 될 것까진 없는데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목표는 없다. 목적도 없다. 단지 이 곳에 오면 그래도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럴만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 꼭 상담사가 돼야 한다거나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언가가 되려고 하면 꼭 될 수 없는 이유들만 찾아내는, 이상한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저 '매일매일 충실하자' 그뿐이다. 이를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럴 거면 왜 그 비싼 돈을 주고 대학원에 갔냐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모든 행동에 완전한 이유와 확실한 목표가 동반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안을 안고 살며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이라는 걸 한다. 그 노력은 때때로 우리가 아는 형태를 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형태도 목적도 끝도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가능한 시간과 마음으로 채우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꿈을 잊었다고 꿈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 미생



 "이렇다 할 목표를 두고 있진 않아요. 물론 대학원에 왔으니 베스트는 상담사가 되는 것이겠지만 너무 그것에만 매달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전화를 끊고 나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왜인진 모르겠는데 울고 싶었다. 하지만 버리기엔 너무 많은 양이어서 밥이라도 다 먹으려고 꾸역꾸역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왜 울고 싶은 거지? 왜 갑자기 힘이 빠지지? 애써 유지해오던 평정심에 금이 갔다. 그래,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결과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중 한명일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이렇다 할 결과를 냈으면 싶다.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결과가 없는 삶은 아까운 삶일까?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마음을 긁기 바쁘다. 진물이 새어 나올 때까지 긁는다. 내 마음의 진물은 눈물이다.


상담사가 되기 싫은 건 아니다. 된다면, 될 수만 있다면 되고 싶다. 하지만 간절함은 무섭다. 간절함은 용기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용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간절함을 억누른다.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될 수 없어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일 거라고 되뇐다. 정말 그럴까? 의심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탁' 전원을 꺼버린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다시 눈을 감는다. 어둠 위에 덮인 어둠은 모순적이게도 밝다. 두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늘 그렇듯 죽고 싶어 진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늘 나를 죽고 싶게 만든다. 끔찍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되어야 하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어있는, 뭐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너무 꿈같은 이야길 하고 있나? 그래도 되어야만 하고, 해야만 하는 삶은 너무 버거운 걸.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딱 하나일 것이다.



올해도, 오늘도 부디 죽지 않고 살아내기



내일은 천천히 그리고 후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와야지. 설령 그들이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가 닿지 않는 다고 해도 나는 오롯이 나의 생각을 꺼내어 보여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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