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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y 21. 2020

2주치 약을 털어 넣었다.

죽음의 발끝은 커녕 개미 똥구멍도 못봤다.



'아 죽고 싶다'



죽음은 뜬금없이, 기척없이 내 안에 솟아 오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니 지나치게 행복한 3일을 보낸 후였다. 그래서였을까? 행복의 부작용인 불안과 우울이 일상을 덮쳤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터진 울음과 함께 죽는 것 말곤 다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계속 부엌을 서성였다. 칼을 꺼냈다가 다시 넣고, 손목 어디를 그으면 좋을 지 생각하다 결국엔 엉엉 울어버렸다. x발 대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주저 앉아버렸다. 칼을 제자리에 넣어 두고 수납함을 등지고 엉엉 울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아 봤거나 스스로 "아, 그때 그건 우울이었어."라고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 나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



엉엉 울다가 도저히 그 상태로 버틸 수 없어서 알게 모르게 모아 놓은 혹은 까먹고 안 먹은 약들을 꺼내 왔다.
나는 조울증 환자로서 꽤 많은 진정제와 안정제 그리고 수면제를 복욕 중이기때문에 하루에 약을 4-5알씩 먹는다. 모으고 나니 2주치 정도가 모였다. 14x5=70 약 70알 정도의 알이 내 손에 있었다. 한꺼번에 삼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죽을까? 아니야 사람이 약으로 죽는 건 쉽지 않다던데, 독극물이 아니면 안된다던데 등등 온갖 생각들이 밀려왔지만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나는 딱 2번에 내 손에 들린 약을 모두 먹었다.



크기가 다양해서인지 넘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금방 물에 녹는 약도 있어서 입에 쓴 맛이 맴돌기 시작하니 정말이지 다 뱉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꾹꾹 참고 전부 삼켰다. 삼키고 나니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약을 먹은 날은 화요일이었고 다음날엔 총 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했고 목요일엔 연구모임, 치과 진료가 잡혀 있었다. 이성이 돌아온다는 게 그런 느낌일까? 우는 내내 생각도 안나던 일정들이 와르르 제 이름을 외쳤다. 멍하니 부엌에 5분정도 앉아있다가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죽는 게 아니라면 결국 이 뒷감당을 전부 내가 해야하잖아? 그런 끔찍한 일을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되는대로 다 토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약 알맹이들이 식도를 타고 올라 변기통에 빠질 때마다 "포옹 포옹" 소리가 났다. 내 상황과 비교하면 너무 귀여운 소리라서 더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진걸까



2시간쯤 지났을까?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인사도 동생의 말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약을 먹은지 3시간째, 나는 약에 취해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약을 이긴 것이다. 대충 머리를 감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는 3시간 중 두 번, 환승을 해야했다. 나는 그 두 번 다, 때를 놓쳤다 늦을 뻔 했지만 일찍 출발해서 다행이었다. 강의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사람들이 괜찮은거냐고 많이 아파보인다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 +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냥 웃기만 했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감기는 무슨 아, 이것은 마음의 감기인가요? 그렇게 6시간 동안 어떻게 저떻게 버텨서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또 또 또 놓치고 놓쳤다. 오늘 안에 집에 갈 수는 있나, 눈물이 핑 돌았다. 미친년, 이 미친년아 왜 그랬어!!!!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나를 욕했다. 달래 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어. 반 강제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해서 집에 도착하니 딱 저녁 6시였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다시 쓰러졌다. 그리고 오늘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오전 연구 모임과 치과 진료라는 아주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속이 조금 괜찮아졌는지 허기가 졌다. 어제는 허기고 나발이고 그냥 계속 어지러운 게 전부였는데 신기했다. 그래도 막상 뭘 먹으려고 하니까 구역질이 올라와서 시리얼 반 공기 정도 먹고 말았다. 몸은 아직도 어지럽고 무겁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싶은데 정신을 잃은 그 순간들이 좋았다고 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무섭기도 하고 너무 빨리 가서 무섭기도 하다. 지금이 가면 다음이 오는 그 당연한 순환이 버겁다. 언제나 지금 같을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을 느끼지만 반대로 지금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지나면 다가올 다음이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마치 무언가의 보상처럼 주어진 행복때문에 어떤 불행과 불안을 견뎌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없고 그 순간이 지나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내 인생은 불행해지기 위해서 생겨난 것만 같다. 아니라고 하는데, 아닌 걸 아는데 왜 이렇게 모든 게 다 맞아 떨어지는 걸까? 맞다. 내가 그렇게 만든다. 스스로 그 길을 만들고 걷는다. 내가 아니라고!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데 내가 가장 먼저 고르는 선택지가 바로 행복을 갚기 위한 불행 혹은 무언가 보상을 위한 행복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긍정적인 선택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아주 오랜 습관이었고 이젠 관습이 되었다. 후, 쏟아내듯 글자를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지 막막하다. 



한가지 확실한 건 약을 먹을 거면 다음날 아무 일정도 없을 때 때려 넣자. 아니 애초에 때려 넣는 선택지 자체를 마음에 두지 말자. 이렇게 무거우면서 질질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을 또 느낄거야? 느끼고 싶어? 아무리 좋았다고 하지만 그건 그 순간일 뿐, 정신 차리고 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되레 더 큰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제발 제발 이렇게 글을 쓰면 내 마음에 남을까? 작은 조각이라도 남을까? 우울이 나를 놓아줄까? 내가 우울을 놓을 수 있을까. 모든 게 반복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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