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May 10. 2020

사랑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끌리게 되더라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말이 어떻게 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사랑'을 느끼며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는 게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항상 나를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여기가 현실이야? 어디가 현실이야? 젠장!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와 같은 질문들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대답을 얻지는 못한다. 책 속에서는 어떤  질문도 필요 없을 만큼 이야기들이 당연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묻는 내가 바보 같달까?


나는 SF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주나 자연 과학 등에는 1도 관심이 없다. 솔직히 관심 없는 게 창피하긴 하다. 나는 나의 세계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다. 지구가 얼마나 아픈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오래전에 사라진 아이들인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구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귀에 박히도록 들었고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이대로는 안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게 그 방향을 처음으로 제시해 준 사람이, 와 닿는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바로 정세랑 작가였다.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며 나는 내가 지구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주 조금 감이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만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 리셋 p 45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리셋을 읽으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구질구질한 죄책감과 마주해야 했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미뤄왔던 내가 이 소설의 악역이었다. 나 하나가 바뀌면 내 세상이 바뀔 일이었다.



내가 보낸 마지막 여름이 너랑 함께여서 다행이야.
내가 쏘는 마지막 과녁이 너라서 다행이야. -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p 251



죄책감을 마주하면서도 이 책을 끝내 놓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어떤 세상의 인간이든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완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며 죄책감을 덜어내며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랑해서 무너지고 사랑해서 살아내고 뭐 그런, 흔하디 흔한 사람들. 그래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인 나는 지구의 아픔보다는 사랑의 쓰라림과 달다구리 한 맛에 더 이끌렸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이 책을 다 읽어서 다행이다. 정세랑 작가님도 이런 인간이 있을 거라 예상하신 걸까? 아니, 그냥 당연하게 쓰셨을 것 같다. 어떤 존재든 '사랑'이란 감정을 생에 한 번쯤은 느끼지 않겠냐고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쓰시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나는 그런 담담한 사랑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님을 좋아한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일단' 읽어보자 싶은 것 같다.



태이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라는 자신이 공동체 유전자로 태어났을 거라 짐작했다. 대멸종 이후 인류는 오래 내려온 유전자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파국을 불러온 공격성과 이기심을 물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종 다양성 보호에 기여한 유난히 이타적인 사람들의 유전자를 역시 복잡한 절차에 거쳐 모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유전자가 아닌 익명의 공동체 유전자를 원했다. 닮은 대상이 아니라, 닮지 않은 대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태이도 그랬을 것이다. - 7교시 p 226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평소에는 생각할 일이 별로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도 너무나 버거워서 미래든 뭐든 일단 지금 당장이 전부인데 어떤 이는 미래를 위해 환경 보호 운동을 하고 다른 동물들의 생명권에 목소리를 더하고 함께 살아가는 여성, 약자 그리고 소수자들을 위해 앞장선다. 그런 이들을 경외심으로 바라보는 것 외엔 하는 게 없는 나는 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물론 내가 우선인 게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건강하고 당당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 역시 건강할 수 없고 당당할 수 없다. 대신할 수 있는 일을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되돌아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나에게 그런 것이 남아있기는 할까? 또 시작도 전에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지지만 그 질문들에 잡아 먹히지 않고 사랑부터 가능한 맑은 하늘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아주 오랫동안 육식 위주의 식단에만 익숙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다른 동물들을 생각하고 함께 살아갈 미래를 그리며 느리지만 확실한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뎌 보려 한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건넨다. 우리는 그렇게 살포시 건네진 손에 마음을 포개면 되지 않을까?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함께 부풀어 오를 수 있도록.




- 2020년 5월 10일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 약 줄여준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