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Jul 16.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감사일기

잊을만 하면 돌아오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살기 싫다.

왜 살았지

왜 살아있지

뭐하러 지금까지 살아서 이렇게 비참함을 느껴?



어제 네이버 블로그에 쓴 짤막한 일기의 마지막 문단이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무수히 많은 우울과 부정적인 사고들과 싸우고 있다. 비교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앞서 가는 사람들, 말 그대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다.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지

나는 왜 저걸 가질 수 없지

나는 왜 저만한 돈이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왜 왜 왜


'WHY' 비교에는 항상 이유를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를 알면 답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찾은 이유는 '나이기 때문에' 였다. 그냥 나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어서 저만큼 할 수 있는 거고 나는 그냥 나여서 안되는 거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엔 '어? 비슷한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명한 누군가라면 (내가 당신을 얼마나 닮고 싶어하는 지 아나요ㅎㅎ) '그게 왜 존재하는 자신의 문제인거지?' 라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맞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아.직.까.지.도 'BEING' 존재하는 나를 미워하고 부정하고 있다. 2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고 그 때문에 수없이 많은 것들을 놓치고 포기하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아닌 척 하는 것 어렵지 않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쓰는 글들만 봐도 그렇다. 열심히 살자고, 노력하자고, 감사하자고 말한다. 그런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는 이들은 모르겠지. 내가 속으론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젠 그 갭(gap)을 견디지 못하고 두 어플을 삭제했다. 기록의 용도, 정보 수집 및 공유의 용도가 아닌 남과 나를 비교하기 위하 용도라면 계속해봤자 비참해질 뿐이니까.


삭제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운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하튼 어플을 삭제하고 일기를 쓰다가 구질구질한 내 말들에 눈물이 나서 노트북 앞에서 짜디 짠 눈물을 훔치다 배가 고파져서 저녁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의식의 흐름이지?) 달걀 프라이와 먹다 남긴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걸 준비하다보니 또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아졌다. 그래도 밥 먹을 힘은 있나보네 싶어서 웃기기도 하고 그래 멋지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뭐 그리 대단하 사람이 되겠다고 발버둥을 치냐?



https://youtu.be/G14s0fXBcN4


그러다 전날 밤 봤던 유퀴즈가 떠올랐다. '바다 개구리라는 건 없어요. 그냥 개구리, 그냥 개구리가 뭐 어때서요? 난 개구리야. 행복한 개구리." 라고 말씀하시던 김은주 디자이너님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구글에 다니는 사람이 하는 말이잖아- 그래봤자 나보다 억을 더 벌면 더 버는 사람일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구글에 다니는 사람은 사람아닌가?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뿅!하고 구글에서 일할 자격을 갖고 태어나나? 다들 노력해서 그 자리에 있는 걸텐데 나는 그만한 노력이라도 해보고 징징대고 있나?


노력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음, 그 노력을 유지하지 못한 게 문제랄까?

그렇다면 왜 유지하지 못했을까?


결국 비교였다.


결정은 스스로가 했지만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 속에는 정말 많은 타인이 있었다. 내가 여기저기서 데리고 온 타인과의 비교가 '노력하자'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나는 못해, 못났어, 할 수 없어'가 베이스였기때문에 어떤 노력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봤자 나는 못난 나일뿐이니까.


비교가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인간적이면서 슬프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여전히 비교와 싸우고 있을 나를 위한 응원의 글이 되겠구만. 미래의 나야, 그만 비교해.


비교를 그만하기 위해선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알고 감사해야한다.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걸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 '나'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꼭 능력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든 습관이든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아는 사람이 나중에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설령 가질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 살아가는 데엔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래 '필요', 남이 가졌으니까 나도 가져야 해! 가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있죠. 압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살다보면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필요하지 않더라도 내가 갖고 싶다면 가지면 된다. 그러나 필요하지도 않고 딱히 갖고 싶지도 않은데 남이 가졌으니까 나도 가져야하는 건? 그건 뭘까?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마음 때문에 계-속 힘들었다. 내가 선택한 길들을 의심하고 후회했다.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건데 마치 그러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간호사가 될 것마냥, 물리치료사가 될 것마냥, 어디 식품회사에 들어가 사무직을 할 것마냥, 근데 나는 단 한번도 그런 꿈이나 목표를 가져본 적 없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가지 않을거다. 근데 왜 그 길에 가지 못했다고 나를 비난하고 있지?


친구들만큼 돈을 벌지 못해서겠지.

돈 이야기하는 거 끔찍히 싫어하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가진 경제적 자유를 지금의 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도 잠깐 만나 커피를 마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 앞에선 하하호호 웃고 있지만 그 약속을 위해 한 끼를 굶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내 생활을 창피해하고 있다. 하, 이러니 본질이 흐려지지. 내 가치가 바닥을 치지. 내 가치관이 못마땅하지.



https://youtu.be/zgniZo2f2gc


오랜 시간동안 방황했다. 우울증을 앓았고 섭식장애를 앓았고 방치하다보니 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먹고 토하지 않으면 몸에 상처를 냈고 일방적으로 친구들을 피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무엇이냐 물으면 1년 전까지의 내 삶이 그랬다. 병이 이유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나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그러니까 이제 갓 출발선에 선 내가 몇 년을 앞서 달려온 친구들과 같은 곳에 설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곳에 서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애초에 돈이 중요했다면 대학원에 오지 않았을 거고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없었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고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해서도 아니고 (앞으로의 목표는 될 수 있겠지만) 죽지 못해 사는 삶들에게 손을 뻗기 위해서다. 우리 조금 느리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말을 걸고 싶어서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내 삶은 똑같을 거다.

없던 돈이 생기지도 않을거고 번쩍! 하는 아이디어나 직업이 생기지도 않을거다. 근데 '나'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지 않을까? 몇번이고 이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두드릴 수록 단단해지는 쇠처럼 나도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다. 포기하지 말자, 멈추지 말자, 도망가지 말자, 내가 선택한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 돈이 좀 없어도 남들보다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를 선택한 건 너잖아.


처음부터 아주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자. 그건 불가능하잖아.

아주 작은 성취부터 해나가자. 아주 작고 작은 일들부터 내 것으로 만들자. 아무것도 되지 말고 그냥 내가 되는거야. 너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잖아. 그래서 지금 여기에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거잖아. 누구처럼이 아니라 누구보다가 아니라 그냥 '나',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잖아. 왜 그 마음을 자꾸 잊어버리는 거야? 슬퍼서 그래? 그럼, 슬프지. 돈이 없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 근데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일을 꾸준히 최선을 다해 하다보면 다음이 오지 않을까? 늘 그랬듯이.



https://youtu.be/fTVg2Eh4XAM


적어도 지금의 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배우고 있고 내일 할 일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다. 비싼 커피는 못 마셔도 편의점에 파는 아몬드 라떼를 마실 수 있고 비싼 밥은 못 사 먹어도 달걀 프라이에 김치만으로도 맛있는 한끼를 채울 수 있다. 학벌이 좋진 않아도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자부심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이 공부를, 분야를 사랑하고 있잖아. 멋있잖아 너.


몇 번을 넘어지고 무너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내일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다. 그러니까 너무 낙심하지 말자. 지금이 끝이 아니잖아. 언제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땅만 보고 있어선 안돼. 앞을 봐야지. 옆을 보고 위를 봐야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자! 그럼 다음 할 일을 하러 가자!

오늘은 축어록도 풀어야 하고 공개사례발표회도 가야하잖아.

무리하지 말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제대로 걷자.









작가의 이전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