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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08. 2021

섭식장애, 살 빼려다 걸리는 병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https://youtu.be/B-b6MW1L-sA



정말 그렇다니까요, 살 빼기 위해서면 애초에 살이 안 빠질 때 멈췄을 거예요.
 멈출 수 있었을 거예요


학위 논문을 위해 주 2회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오가며 교통비와 장소 대여비로 생활비를 펑펑 쓰고 있다. 비행기로 이동하면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시간과 상관없이 잘 모르는 곳을 돌아다니는 건 꽤 많은 체력을 요한다. 그래도 인터뷰는 즐겁다. 즐겁다고 말해도 되나? FUN 보다 MEANIGFUL에 가깝다. 의미 있는 시간, 사람, 이야기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섭식장애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그가 내게 의미 있기 때문이고 그 의미를 둘러싼 수없이 많은 오류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기 때문에 모른 체 할 수 없다.


인터뷰 내용은 블로그에 공개할 수 없지만 (언젠가 제 석사 논문이 나오면 거기에 있을거니까) 하고 돌아올 때마다 스스로가 좀 더 현명하고 따뜻하면서 강단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갰다는 바람이 더 강해지고 짙어진다. 짙어지는데 공부는 열심히 안하니까 이 글을 쓰면서도 반성을 더 하게 되는구만, 반성하는 게 어디야 요즘의 난 분명 전보다 많이 자랐잖아. 본론으로 돌아와서 5명 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고 있다. 돈도 돈이고 시간도 시간이지만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기로 결정한 이들의 용기를 위해서라도 논문을 꼭 완성하고 싶다. 최근 쓰는 글마다 '논문 완성'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섭식장애는 '다이어트'라는 커다란 막에 가려져 있다. 이 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살면 되지, 왜 그렇게 극단적이야? 그런 거 하나 케어하지 못하는 건 의지 박약 아니야?" 그놈의 의지는 정신질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단어인가보다. 그래, 처음엔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미워했고 미워할수록 이 병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왜냐? 섭식장애의 원인이 '다이어트'만 있다는 생각은 전부 X소리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시작이 다이어트가 아닌 사람도 있고 시작은 다이어트였지만 사실 그 다이어트조차 하나의 창구일뿐 이유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왜 아직도 섭식장애는 전문가조차 치료가 어렵다고 말하는 병이겠는가?!



살빼고 싶어서 안달난 애들이나 걸리는 병이잖아,
외모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애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외모가 중요한 사회인 건 맞잖아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식단일기 모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었던 말.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섭식장애로부터 회복하고 외모강박,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는 나도 예쁘고 귀엽고 멋지고 잘생긴 걸 좋아한다. 이 블로그에만 해도 아이돌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가끔씩 나조차도 놀랄만큼 무서운 말을 할 때가 있다. "아이돌은 외모지. 일단 외모가 돼야 아이돌을 할 수 있는거야" 이 말을 들은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사회에서 만난 아이돌은? 연예인은? 그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게 떠오르는가?


섭식장애 환자들은 안그래도 '살'이 주 이슈인데 주변에서도 '섭식장애=살' 이라는 공식을 철썩같이 믿고 있으니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살이 찌면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치료를 시작하면 살이 찌는 건 당연한거고 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거고 먹기 싫은데 먹어야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니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무도 던지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살을 빼야하는 이유가 뭔데?


어떤 날은 꼭 살을 빼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검색창에 다이어트를 검색하고 유튜브에 다이어트 후기, 방법들을 검색한다. 10kg을 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도 해야하는데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은 '유지어터'라는 단어를 검색한다. 이미 몇번이고 겪은 요요가 무섭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감량을 하고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본다. 나도 의지를 갖고 빡세게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의욕이 샘솟는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진짜 토 안하고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다이어트 식품을 파는 쇼핑몰에 들어가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간식 대용으로 먹을 단백질 쉐이크도 찾아본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초코맛도 있고 단호박맛도 있고 곡물맛도 있다. 아차! 식단도 중요하지만 운동도 필수다. 운동을 안하면 근육이 생기지 않아서 체력도 딸리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요즘 같이 위험한 시기엔 나가서 운동하는게 쉽지 않으니 홈트를 하기로 한다. 홈트를 해도 제대로 하려면 옷이 필요하니까 요가복이나 운동복을 사야겠다. 장비빨이라는 말도 있잖아? 건강하게 이번에는 정말 건강하게 빼는거야.



자, 여기까지 읽었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나? 꽤 괜찮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대부분 건강하게 빼겠다는데 뭐가 나빠?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땡! 틀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틀렸습니다.



꼭 살을 빼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 다이어트엔 목적이 없다. 목표도 없다. 그냥 순간의 불안감에 다이어트 식품부터 운동복 구매까지 '건강하게'라는 말을 앞세워서 합리화하고 있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결심하기 전엔 분명 자극이 있었을 것이다. 길을 가는데 정-말 날씬한 사람을 봤다거나 (이 날씬함도 지극히 주관적) 지인이나 가족이 "너 요즘 좋아보인다?"라고 했거나 평소엔 잘 들어가던 바지가 조금 끼인다거나 등등 이 세상엔 내가 단단하지 않으면 나를 뒤흔들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나 '나'의 의견은 묵살당한다. 당연한거니까, 살을 빼는 건 자기관리라고 자기관리는 긍정적인 거니까.


그래서 섭식장애의 치료 중 가장 첫 시작은 당신의 섭식장애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되었나? 어쩌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내 몸으로 하는 거니까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우린 그저 상처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돌볼 자신이 없어서 '자기관리'라는 명목 하에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이어트가 시작이었다고 한들 그 다이어트는 왜 시작되었는지

왜 살을 빼야하는지

살을 빼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지

그것을 얻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가치있는 일인지

지금 내 안에 자리잡은 섭식장애는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무엇을 주는지


이 질문들에 처음부터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무엇을 좋아하나요?

언제 행복한가요?

행복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삶은 어땠나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기억나나요?

그 순간마다 어떻게 견뎠나요?

당신은 슬픔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지금 누굴위해 살고 있나요?



섭식장애 치료의 시작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다. 도망가고 싶고 무시하고 싶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그다지 아픈 것 같지도 않고 섭식장애라고 하기엔 난 충분히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혹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데 굳이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근데 그래도 이상하게 자꾸만 병원을 찾아보고 상담소를 알아보고 인터넷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본다면 변기 앞의 내가, 거울 속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싫고 미운데 안타깝다면 우리 한번쯤은 같이 고민해보는 게 어떨까?


섭식장애 완치가 목적이 아니라 진짜 나를 돌아보고 알아차리고 앞으로의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있는지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계속 토하고 먹는 게 무섭고 체중계에 미친듯이 올라가도 괜찮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의지박약이어서 이 병을 떨쳐낼 수 없는게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가, 나를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섭식장애를 놓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선 힘들다.

나는 15년간 혼자서 너무 힘들었다.

타임머신이 생겨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만큼 너무 힘들고 외롭고 불안한 날들이었다.

솔직하게 내 병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나보다 내 병을 안타까워했다. 

그 병은 영영 나을 수 없는 병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병원에 가라고 도움을 받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에 가기 힘든 사람도 있고 이미 상처받고 돌아온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혹시나 나라도 괜찮다면 도움이 되고 싶다. 아직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거울에 비친 내가 싫어서 ㅎㅎ 샤워할 땐 여전히 거울을 쳐다보지 못하는 나지만 적어도 '이유없는 다이어트'에선 벗어났다. 그리고 먹은 것을 온전히 소화해내는 힘도 길렀다. 안될 것 같던 일들이 놀라우리만큼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15년 중 5년은 회복에 쓴 것 같다. 만약 혼자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 한편으론 5년이면 빠르지 싶기도 하다 ㅎㅎ 근데 외로웠어서, 너무 너무 외로웠어서 혹시나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우리 같이 이야기해보지 않을래요?


https://forms.gle/SQ6NBrGXPM1XXyw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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