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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Dec 15. 2022

[섭식장애 회복] 언제든 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최후의 만찬과 흰곰 실험 



'~해야만 한다' 라는 말의 위압감을 경험해본 적 없으신 분 계신가요?

그런 분이 계신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너무나 궁금하니 꼭 댓글 남겨주세요 (ㅎㅎ)



https://youtu.be/B-b6MW1L-sA

썸네일...접니다!


말라야 해 - 살찌면 안돼

먹어야 해 -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

굶어야 해 - 먹으면 안돼

살아야 해 - 죽어야 해

죽어야 해 - 살면 안돼

토해야 해 - 토하면 죽어! 


"~해야 해" 와 "~하면 안돼, 죽음이야"

많은 섭식장애 환자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 중 하나, 바로 '극단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상담에서는 '통합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평소엔 '일관성'이라는 멋진 말로 가려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특징입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최후의 만찬'이라며 온갖 음식들 (굳이 말하자면 ^살찌는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본 적 있으시죠? 그놈의 '최후의 만찬'은 왜이렇게 끝이 없는 건지, 저 역시 끝없는 만찬과 끝없는 한끼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이거 먹고 나면 절대 햄버거, 라면, 치킨, 피자 먹으면 안돼 



네, 인간의 욕망은 무섭습니다. 절대 안된다고 하면 그때부터 안된다는 것들만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면 안돼! 라고 말하면 평소 꿈에도 나오지 않는 코끼리가 머릿 속을 가득 채웁니다. 왜 이럴까요? 놀랍게도 이 주제와 관련된 실험이 1987년에 이!미! 실시된 적이 있습니다.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웨그너가 제가 앞서 말한 '코끼리'를 '흰곰'으로 바꿔 (사실 그가 흰곰이라 한 것을 제가 코끼리로 바꾼 것이지만ㅎㅎ)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흰곰을 생각하라'고 지시하고 다른 그룹에겐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흰곰이 생각날 때마다 종을 치게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받은 그룹의 학생들은 일상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계-속 흰곰이 생각나서 다른 그룹보다 종을 훠얼씬 더 많이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에는 이름도 있습니다!



리바운드 효과(흰곰실험)
회피하려는 생각과 억압이 더 강한 집착을 낳는다!



이 외에도 영국에서 '흰곰'대신 '초콜릿'을 사용해 진행한 실험도 있습니다. 그 실험에서도 초콜릿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지시받은 그룹이 반대 그룹보다 50% 이상 초콜릿을 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제 아시겠죠? 저의 섭식장애는 금지와 억제 그리고 회피와 함께 점점 더 커지고 강해졌습니다. 그만해야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그만둘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먹으면 안돼, 토하면 안돼!" 그럴수록 더 먹고 싶고 더 토하고 싶었어요. 


누구는 '참자!'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참아야지 하면 더 참을 수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졌어요. 몽쉘 하나를 까먹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냉장고 앞에서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너무 비참했어요. 왜 이 작은 몽쉘 하나에 화장실도 못 가고 잠도 못 자는 삶을 살아야 하나 싶어 극단적으로.....죽고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기로 했어요. 먹고 싶으면 먹고 토하고 싶으면 토하기로요. 딱 하나! "무조건 먹어야 하거나 무조건 토해야 한다"는 없다고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그냥 그때 그 순간 하고 싶은대로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그러다 진짜 끝도 없이 먹으면 어떡해요? 계속 토하면 어떡해요?" 라고 묻습니다. 사실 저도 엄청 걱정했었어요. 한편으론 포기했었습니다. 안되면 그냥 평생 이러고 살자, 토하고 살자, 영영 섭식장애와 멀어지지 못하는 삶이라면 인정하고 살다가....죽자 죽어버리자! 하고요. 폭토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몽쉘이 정말 끝도 없이 들어갔습니다. 원래도 24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를 그 자리에서 다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놀랍지 않았어요. 근데 놀라운 건 '토하기 싫어' 라는 마음의 힘이었습니다. 먹토를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습관이 되어도 먹토는 정-말 힘듭니다. 온 몸에 에너지가 다 빠져 나가는 기분이에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하지만 토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24개를 먹는 동안 토하기 쉽게 우유나 물과 함께 배를 채웁니다. 금새 배가 차고 음료가 턱밑까지 차오르면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게워냅니다. 게워내고 게워내고 그러다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게 일상이었죠.


근데 토하고 싶지 않으니까! 음료를 마시지 않고 몽쉘만 먹었습니다. 몽쉘이 먹고 싶어서 울었으니까요. 

하나, 둘, 셋, 넷, 다섯.....다섯.....여섯...여섯.......일....일곱..............여덟.......입에 단내가 미칠듯이 나기 시작했고 게워내야 할 타이밍에 게워내지 않으니 입안이 썩어 들어갈 것 같았어요. 물론 첫날부터 성공하진 않았습니다. 결국 그 날은 물을 때려넣고 다 토했습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반복되었고 다이어트를 위해서 죽어도 못 먹게 금지했던 몽쉘을 원없이, 하루가 다르게 계-속 먹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내일도 먹을 건데....꼭 지금 이걸 다 먹어야 하나



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이 병과 멀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변기를 부여잡고 목에서 피가 나도록 토하던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을 새서라도 토할 때를 기다리던 제가 몽쉘 3개를 먹고 산책을 나갔던 날, 저는 다른 의미로 울었습니다. 엉엉 울며 걸었어요.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고작 이거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먹고 토하며 보냈던 십 몇년의 시간이 허망해서 울었어요. 연히 그 뒤에도 저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저의 다짐은 망가지고 또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하루 5번, 10번도 더 토하던 과거와 달리 6개월에 1번 토할까 말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요. 토하고 싶으면 언제든 토하라고, 폭식하고 싶으면 언제든 폭식하라고 말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어라! 토하고 싶으면 토해라! 근데 웃긴 게 이젠 토하고 싶어도 토가 잘 안나오고 폭식하고 싶어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배가 부르고 질려서 더 먹지 못해요.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는 말을 최고의 칭찬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제가 이젠 "나....배불러"라고 폭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절대는 없습니다. 완벽이 없는 것처럼요 ㅎㅎ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절대의 감옥에 가두지 마세요.


저는 이제 과거로 돌아가라고 해도 못해요.

예전처럼 살아라, 살아도 된다 해도 못해요.

안 그러고 싶어요.





※ 참고 : EBS 세상의 모든 법칙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왜 더 생각날까?>



이 과정을 견디기 위해선 "살이 찔 수 있다. 살쪄도 된다."라는 수용도 필요합니다. 다음 번에는 그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먹고 싶은 대로 먹도록 내버려 두려면 살 찔까봐 먹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달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사실 이것도 "살찌면 안돼"라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거니까 "살찌면 뭐 어때~"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에게 제일 (...제일 말고 더 강한 말 없나요)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애초에 자유로운 존재들이니까요. 부디 오늘 밤은 냉장고나 변기 앞에서 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소중해요. 

어떤 음식보다도 몸무게따위 보다 말도 못할만큼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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