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Jan 24. 2017

평범하지 못한 아이

자기연민

                                                                                                                                                                                                                                                                                                                                                                                                                                                                                                                                                                                                                              

*
약 1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소위 왕따라고 말하는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 1년 내내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인생의 중심이 친구들이었던 17살의 나에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매일매일 울었고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아빠랑도 정말 많이 싸우고 아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지금도 떠올리면 끔찍한 상처를 받았다. 견디다 못해 고등학교를 옮기고 싶어서 전학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작은 동네 내에서 전학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어린 마음에 떼를 썼다. 그러다 교장실에 불려 가기까지 했었다. 담임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내게 한 말은 "네가 특이해서 그래, 네가 이상해서 그런 거야."였다. 독서를 좋아해서 말하는 게 또래들과 다른 것도 나의 문제였고 그깟 왕따 생활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는 내가 문제였다. 무시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될 것인데 내가 유별나다고 했다. 사실 그전부터 내가 또래들보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고 또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우리 가정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개인적인 사건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외부적인 것들이 문제라고. 그런데 열일곱 살,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내게 무심코 던진 말들이 마음에 씨가 되어 "나는 이상해, 나는 특이해, 나는 유별나, 나는 문제야"라는 생각을 키웠다. 


**
교장 선생님은 앞으로 내가 많이 힘들 거라고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나는 많은 벽에 부딪히게 될 거라고 말하는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소파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가증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나의 인격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그 모든 모욕을 듣고 있다 교장실을 나오자마자 어디 구석으로 뛰어가 한없이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왕따 생활은 다행히 끝났지만 왕따 생활보다 그 날의 대화는 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영영 끝나지 않은 채로 반복 또 반복되었다. 모든 선택이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행동들이 실패일 것만 같았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지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나는 특이하다, 이상하다 그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것들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똑같은 것을 거부하자, 그저 그런 것들을 거부하자, 나는 이상하고 특이해 그리고 특별해. 남들과 다른 인생이라 더 소중하고 멋진 거야. 그러나 나의 최면은 허상이었고 약했고 나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
부족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그런 꿈을 꿨다.
가장 미워하는 고모라는 사람들 앞에서 손목을 긋고 또 긋는 꿈.
이런 꿈은 처음이 아니다.
내가 늘 꿈꿨던 가장 추악하고 제대로 된 복수의 모습이다.
나를 불필요하다고 말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한 사람들 그리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나의 동생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넣은 사람들에게 어린 나는 늘 죽음을 보여주는 복수를 꿈꿨다. 그렇게 10대를 지내왔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나 나의 편이 아니었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또 창피한 존재는 정말 나였다. 내가 아무리 당당하게 인생을 버텨내고 살아왔다고 한들 그들에게 나는 공부도 어중간하고 존재감도 어중간하고 얼굴도 어중간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처음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죽음 이외의 복수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런 게 어딨냐고 한계는 스스로가 만드는 가장 바보 같은 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이렇게 자라왔다. 내가 바보라고 내가 문제라고 나보고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이 삶이 너무 억울해서 정말.



****
나는 정말 아프고 힘들다. 잊으라, 잊으라 해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내 안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 것들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아빠에게 나는 실패자고 엄마에겐 이상한 딸이다. 어제도 오늘도 엄마에게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 너도 알지? 대체 왜 그렇게 살아. 그냥 살아. 다 잊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남들보다 배우지 못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 인생을 왜 그리 어렵게 살아 뭐 그리 특별하게 살려고 해. 너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야. 특이한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화를 내지도 못하겠다. 엄마에게 지난 과거들은 그저 과거일 뿐이고 엄마가 힘들 때만 꺼낼 수 있는 엄마의 무기니까, 나는 탓도 할 수 없고 아프다고 말도 못 하겠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남들도 똑같이 힘들고 아픈 과거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는 말, 모르는 게 아니다 나도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지금껏 내 선에선 최선을 다해 참고 웃어왔다. 그런데 점점 무섭다. 이제 정말 내가 실패자 같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니라고 부정을 할 수 없을 만큼 나의 미래가 막막하고 캄캄하다. 괜찮은 집에서 괜찮게 살아온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너무 죄스러워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정말 숨이 막힌다. 다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라서 결국 나의 잘못이요,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섭다.




*****
다른 누구보다 내가 싫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화가 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라는 말을 되새기며 그래 적어도 나쁜 사람, 못난 사람은 되지 말자.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인간관계 내에서 만큼은, 마음만큼은 이쁜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알게 모르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 왔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은, 그들이 판단하는 눈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젠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싶다.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사람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 모두가 다 나보다 더 잘 지내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런데 난 나만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채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나만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거였나 보다. 잊어야 마땅한 일들을 잊지 못하고 흘려보내야 할 것들을 보내지 못하고 나은 사람은커녕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외톨이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잘하는 것을 찾는 것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무엇 하나도 나는 이뤄내지 못했다. 나의 모든 걸음들이 후회스럽고 바보 같고 또 불쌍해서 이렇게 자기 연민 속에 사는 내가 또 불쌍해서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엄마의 눈물과 아빠의 한숨과 동생의 걱정이 다 나의 탓이라 한없이 미안하고 또 한없이 밉다. 




나는 정말 열심히 견뎌왔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자기 연민과 이상한 아이라는 낙인이 다인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自分探し- 자아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