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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23. 2017

어디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괜찮아! 할 수 있어! 의 모순


大丈夫です。



일을 시작한 지 이제 2개월 차,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습니다" 가 아닐까?

되돌아보면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 전부였다.

매일매일이 외국어, 외국인 그리고 새로운 업무에 부딪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이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집에 가고 싶어"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웃는 연습을 한다.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고 구두로 갈아 신고 거울 앞에 선다. 

'부디 오늘 하루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빌며 거울 속 나를 보며 웃어본다.

그 웃음은  나날이 어색한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지금도 아는 게 없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첫 주, 첫 달은 열심히 하자!라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바라던 일본 생활이 시작되었고 내 집,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직업도 생겼으니 

우울의 이유들이 해결되었다며, 좋은 날들이 이어질 거라고 - 마음대로 생각했다.

모르는 게 당연했기에 모른다는 사실에 주눅들 지도 않았다. 

나는 신입이고 외국인이기 때문에 배우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 이틀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육 속도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기와도 떨어져 별도의 교육이 이어졌고 

매일매일이 새로운 단어, 말, 문화 그리고 업무의 연속이었다.

똑같은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기에 죽어라 외웠다.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퇴근 시간 즈음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잠을 자도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느라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났다.

정말 이대로 충분한 걸까? 나 정말 괜찮은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괜찮지 않으면 어쩔 건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꺼내 들고 필기를 하고 혼자 롤플레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휴일에도 혹시나 배운 것들을 잊어버릴까, 어딜 가든 노트를 들고 다녔다. 

5개월 만에 남자 친구와 만나 온천 여행을 떠났을 때도 내 가방엔 필기 노트가 들어있었다.

처음엔 신입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많은 분들이 칭찬해 주시고 신뢰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더 열심히 해야지 싶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이면에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숨어있었다.

묻고 또 묻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 의문이 고개를 들어 나를 괴롭혔다.


이게 정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이야?

조금 쉬면 하늘이 무너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네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야?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언제나 괜찮다며 웃고 있었기에, 회사에서만큼은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누구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며 자국민보다도 빠른 속도로 교육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목에서 피가 나고 

생리가 2주 넘게 지속되고 

그래도 그게 다 열심히 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돌본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전과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나를 벼랑 끝에 몰아세우고 있었고 

내가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괜찮아 로봇;이 된 마냥 모든 일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대답인지 최면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이어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인정하지 않은 결과, 내 정신과 이어지는 회로가 끊겨 내가 우는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걱정했다. 지금도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또 괜찮다고 대답한다.


이 글은 결국 괜찮다고 마무리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묻고 싶었다.

이렇게 제삼자의 시선인 양 나에 대해 글을 쓰며 묻고 싶었다.

정말 괜찮냐고 

어디까지 괜찮을 생각이냐고 

괜찮다의 의미는 정확히 어떤 것이냐고.


나는 내가 모든 걸 잘 해내는 사람이길 바라나 보다.

여전히 나의 약한 부분과 모자란 부분을 인정하기 두려운가 보다.

그래서 힘들다고 지친다고 말하는 내가 부끄럽고 속상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아닌 내 친구 혹은 타인이 나에게 내가 가진 증상들을 나열하며 "나 괜찮은 거겠지?"라고 묻는다면 나는 과연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무슨 엄살이냐고 다그칠까? 

괜찮으니까 좀 더 참고 노력해봐 라고 대답할까?

쉬는 날에도 쉬지 말고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업무에 대해 복습하고 

교육 속도가 내 예상보다 지나치게 빠르더라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까?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일단 도전해 보고 노력하는 건 좋다.

허나 잊지 말야 할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휴식 혹은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겐 쉼표를 내어주면서 왜 본인에게는 이리도 야박할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아서 더 크고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게 아닐까?


조금 쉰다고 해서 

조금 천천히 간다고 해서 

누가 너를, 나를 그리고 우리를 욕할 수 있나


모순과 불규칙한 일들이  가득한 인생에서 

괜찮지 않은 순간쯤이야 당연히 있기 마련인데

왜 나는 내 인생에게 그런 순간을 용납할 수 없을까


나를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다.

이는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친구를 대하듯) 나를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관대하게 내 삶에 쉼표를 찍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의 괜찮다를 그저 괜찮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 괜찮아? 조금 쉬어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오늘은 왠지 그런 밤이다.

괜찮지 않은 날들에 미안한 밤.

결국 내일도 괜찮다고 웃을 테지만

오늘 밤만큼은 나의 괜찮다에 반기를 들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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