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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19. 2017

여섯 시간을 울었다.

인간에겐 늙지 않는 마음이 있다.



*
그득그득 쌓아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눈물이 울음이 되어 쉽사리 그치지 않아 몇 시간을 연달아 울기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소리 내어 울 수 없어서 "끄윽 끄윽" 목구멍으로 삼키다 보니 편도가 부어서 울고 나면 목이 아프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끌어안고 엉엉 운다.
왜 이렇게 울음이 터져 나오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듯 탈진할 때까지 울고 만다.

어제도 그렇게 여섯 시간을 내리 울다가 새벽 6시가 되어 잠들었다.

"어머니가 된다"라는 드라마를 봤다. 오랜만에 사와지리 에리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니 

"1리터의 눈물"이 보고 싶어서 늦은 밤에 정주행 아닌 정주행을 시작했다.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총 15번은 봤을 이 드라마에 나는 또 울보가 되었다.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에 열심인 아야를 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나 -라는 죄책감에 눈물이 났다. 

그러다 또 이런 내가 가여웠다. 

아야에 비교하면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고, 건강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주어진 시간이 매일매일 아깝게 흘러가고 있다.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말이야. 

스물여섯의 내가 되기 위해 나 참 많이 노력했는데 아무도, 나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과 비교하며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만 찾는다.
진심으로 감사할 수 없으면서 자책한다.
왜 더 열심히 살지 않느냐고, 왜 더 감사히 소중히 살지 않느냐고 
나는 나를 탓한다.

그러다 드라마 속 아야의 나이인 열다섯을 떠올렸다.

내 열다섯도 참 많이 힘들었는데, 나 정말 열심히 버텼는데 라는 생각에 
울음이, 악에 받친 울음이 쏟아졌다. 
1분 1초가 지옥 같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운 때가 있었다.
엄마가 사준 손거울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깨뜨렸었다.
거울을 보는 게 싫어서.
내 몸뚱이로 다음날 또 눈을 뜨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미칠 듯이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론 무서웠다.

벌써 십 년이 흘렀다.
누군가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며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한다.
보란 듯이 사랑도 하고 일도 하고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근데 아니다.

십 년이 흘러 강산이 변하다고 해도 
내 열다섯은 변하지 않는다.

보란 듯이 사랑도 하고 일도 하고 어른이 되어도
내 열다섯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에겐 아무리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마음이 있다.

어제는 열다섯의 내가 스물여섯의 내게 화를 냈다.
비교하지 말라고 
타인과 비교해 너의 아픔을 같잖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금씩 잊혀 가는 건 슬프지만 
그만큼 현재를 살고 있는 네가 나는 부럽다고.
사람은 누구나 힘들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외로울 수 있고
이기심에 찌들어 타인을 밀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는 너를 밀어내면 안 돼.
이 세상 전부를 밀어낸다고 해도 
스스로만큼은 지켜내야 해.
그러려면 너의 아픔에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너의 패인 마음을 
스스로만큼은 알고 안아줘야지.

왜 자꾸 가혹하게만 구는 거야.
-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도 이해할 수 없겠지.
늘 그랬듯이 이 모든 감정을 알 수 있는 건 나뿐이잖아.
그래서 멈추지 않은 눈물을 줄줄, 질질 흘려대며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꿈속의 난, 노래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혼자 그렇게 나를 달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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