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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n 17. 2017

오늘은 조금 우울한 날

♪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대에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제주도 생활 막바지에 발견한 원형탈모, 3일 내내 앓아눕게 만들었던 치통 때문에 오자마자 병원을 다니느라 돌아왔구나 -라는 자각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차츰 현실을 느끼는 중이다. 다음 주에도 약속들이 줄을 서고 있다. '만남' '약속'과 거리를 멀리한 한 달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만나고 이야기하고 의미 있는 말들과 없는 말들이 오가는 중이다.


제주도 생활을 하면서 식습관과 수면습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바뀐 습관은 내 인생을 꽤나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듯했고 가벼운 몸과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 요 일주일 동안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그냥 집에 돌아오긴 아쉬워서 버스를 타고 꽤 먼 부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기도 하며 하루하루가 알차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어 앞으로도 쭉- 이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대는 곧 망가지기 마련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젠 새벽 3시가 되어 잠이 들었다.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의 마지막화를 챙겨봤다. 오디션 프로그램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설마 내가 잔인하기 그지없는 그 방송의 마지막회를 본방으로 챙겨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등수까지 확인하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가 이걸 왜 봤나' 하는 공허함과 함께 침대에 누웠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고, 기뻐하는 이들의 기쁨이 오래가지 않을 것만 같다는 불안함이 나를 괴롭혔다. 내 인생도 그리고 친한 누군가의 인생도 아닌데 그 마지막 잔상들이 왜 그리도 나의 밤을 뒤흔들었는지, 꾸역꾸역 잠들었던 시각은 약 새벽 3시 30분이었다. 한창 잠에 취해있을 시간이었는데 애매한 수면의 질은 나의 아침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지 않은 오늘이었다. 약속이 내일로 미뤄지면서 오늘을 일요일처럼 게으르고 나른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꺼림칙함이 자꾸 마음을 긁는다.


왜일까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취업한 곳과 관련한 쪽에서 사기 사건이 있다는 뉴스 보도를 봤다며 우리 딸도 속은 거 아니야?라는 정말 기분 나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사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안 해봤던 건 아니어서 더 기분이 나빴다. 비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상상하면 너무나 숨이 막혀 제주도에 갔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의심과 여러 가지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취업을 떠나서 나 자신을 만나고 싶었고 그 행위가 집에선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떠났었다. 만족스럽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의 취업이 모두 거짓이 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럴 땐 어떻게,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 수 없이 상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하듯 아주 구체적으로 계획까지 했다. 그러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불쌍해서 차라리 취업을 못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내게 너무나 잔인했다. 나를 제일 믿지 못하는 건 여전히 나 자신이었다.


그런 상태로 어제저녁, 친구에게 조언 나부랭이를 건넸다.


어제의 모순적인 내가 오늘 아침 아빠의 말 한마디에 확실해졌다. 친구에게 건넨 말들은 사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고 내가 진짜 해냈으면 하는 일들이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여전하면서 뭐 대단하게 변화한 듯 나를 이야기하는 내가 사실 거북하다. 식습관도 수면습관도 오늘로서 무너져버린 것 같아 더 허하다. 한순간에 흔들릴 가볍고 나약한 마음이었구나 - 깨닫고 나니 지금 나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고 싶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쪼록 별 탈 없이 일본에 가게 될 것이며 큰돈은 벌지 못해도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을 만큼의 돈을 벌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인생만으로 나는 괜찮을 것이다. 아주 괜찮을 것이다. 이런 건 주문일까 세뇌일까 쓰다 보니 문득 다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유튜브


유튜브는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한편으론 상처를 받고 나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고 부족하고 형편없는 모습이 강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영상을 보며 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나 싫어하는 비교를 또 하고 있다. - 나의 영상이 볼품없이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또 의미를 잃어가게 될까?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꾸며진 말투와 표정들은 남들이 봐도 금방 티가 날 테니 나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거겠지? - 자책하고 있다. 정말 하기 싫은데 나 너무 능력 없는 사람 같아.



다시


생각도 나지 않는 애매한 하나의 시발점이 이렇게나 다양한 좌절을 만들어낼 수 있음에 놀랍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치킨을 시킬 거다.

시켜서 혼자 먹을 거다.

그래도 토하지는 말자.

그냥 그것만큼은 약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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