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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19. 2018

섭식장애 극복하기#6 폭토와 멀어져서 좋은점

나의 행복을 찾아서 

                                                                                                                                                

식이장애의 단점과 힘든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하니 늘 심각해지고 단호해져서 오늘은 구독자님의 댓글을 보고 식이장애와 멀어져서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제인님 감사해여*^^*) 
내가 식이장애와 이렇게나 멀어질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어서 지금도 종종 내가 정말 극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실제로 극복이 가능하구나 싶어 놀랍기도 하다. 자신은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나 응원이 되길 바란다.

질리도록 말했지만 나는 십년 넘게 폭토를 앓아왔다.
아침 점심 저녁 심지어 간식까지 먹고 토하는 사람이었고 하루에 한끼를 먹어도 토해야 직성이 풀리는 심한 폭토 중독이었다. 한동안은 거식증 환자처럼 먹는 걸 거부하기도 하고 먹는 것만 생각해도 구역질이 올라올만큼 음식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음식은 적이었다. 나를 살 찌게 하고 뚱뚱하게 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악! 악의 근원!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진짜 악은 식이장애 그 자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심한 가위에 눌렸고 사이비 종교에 있을 땐 그 증상이 더욱 심했다. 내 안의 식이장애는 나를 음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생에서 멀어지게 했다. '먹지마, 죽어, 돼지, 존나 못생긴 게' 와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들렸다. 당시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 누가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저 무섭고 두려웠다. 살아있어 뭐하나 싶은 마음에 면도칼을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약하고 여렸다. 연애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관심과 사랑에 목말랐고 그걸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었지만 그 음식 때문에 다시 토를 하고 그러다 피까지 토하는 미련하고 불쌍한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말할 수 있다!


※폭토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선 유튜브 영상이나 다른 글에서도 설명했으니 이 글에선 생략하기로 한다. 내가 폭토와 멀어지면서 느끼게 된 소소한 행복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가장 먼저, 타인과의 식사가 두렵지 않다. 나는 친구나 지인들과 식사 약속이 잡히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삼시 세끼를 다 먹으면 살이 찌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외식을 하면 분명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을테니 어떻게든 칼로리 섭취를 줄여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는 내내 언제 화장실에 갈 지 고민하고 메뉴를 정하는 순간부터 친구들이 뭘 시키는 지 보고 아무 의미없는 ㅋㅋㅋ 칼로리 비교를 하며 가장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골랐다. 어떤 날엔 먹어도 살 찌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엄청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주문하고 다 먹은 다음에 곧바로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화장실에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고 약속이 있는 날에도 한 끼에 몰빵을 하기 보다 하루에 세끼! 조금씩 나눠서 내가 먹을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빨리 먹고 빨리 토해야지! 가 아니라 천천히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식사하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을 산다는 것,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잠깐의 식사시간에도 음식이 내게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요리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요리의 즐거움은 커녕 사람들이 왜 그 귀찮은 일을 취미라고 말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어차피 먹으면 토할 음식을 굳이 내가 시간 들여 만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장 먹어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일면 내가 재료를 다듬고 음식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따위 있을리 만무했다. 편의점 음식이나 피자,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 푸드, 과자와 빵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피부 트러블은 말할 것도 없고 소화가 정말 더뎠다. 속이 부대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음식이 내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 음식 재료들에 눈이 가고 내가 나를 위해 요리하는 순간이 즐겁다. 요리를 잘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나를 위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요리의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식에 대해 더 알아보려 노력하고 가능한 한 몸에 좋은 야채를 많이 섭취하려 한다.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 때는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 컨디션에 따라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택하는 행위 자체가 내가 내 몸의 주인이구나! 라고 의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할 수 있는 요리를 늘려 가고 싶다.


세 번째로, 변비와 멀어지고 있다. 한창 폭토가 심할 땐 짧으면 1주 길면 3주까지 대변을 보지 못했다. 먹는 족족 토하니까 대변으로 나올 것도 없었다. 심지어 독소는 잘 빠지지도 않아서 피부 트러블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화장실에 가지 못하니까 기분도 심하게 우울했다. 소화가 안된다는 건 어찌보면 내 몸이 어떻게든 섭취된 열량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닐까 싶다. 몸도 살고 싶으니까 ㅠㅠ 그러나 요즘엔 길어야 일주일? 정도 소요 된다. 여전히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다보니 음식에 대한 집착은 물론 피부도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 아,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요.


네 번째로,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폭토가 심할 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토할 수 있을까, 살을 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 머릿속이 온통 살과 폭토 뿐이었다. 살 때문에 폭토를 시작한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정환경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부분에 대해선 지나치게 확고하다보니 그걸 해결하기보다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굉장히 애를 썼다. 그게 살이었다는 부분이 굉장히 안타까울 뿐이지. 살에 집착하기 시작하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살이 찌면 세상이 망한 것처럼 슬프고 화가 났다. 내 몸이 기능적으로 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그땐 몰랐다. 그러나 요즘은 보여지기 위한 몸이 아니라 내 삶을 잘 살기 위한 도구로서의 신체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끔 몇년 전 사진들을 보면 크롭티를 입어도 자신감 뿜뿜했던 그 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와 쓰러질 것 처럼 위태로웠던 건강상태를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누구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도 떨쳐버린지 오래다. 사람들이 "너는 그렇게 먹는데 살이 어쩜 그리 안찌니" 라는 말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죄책감과 안녕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고 또 맛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나의 관점에만 틀어 박혀 있기에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채롭다.
나는 십년 넘게 세상에 존재하는 즐거움들을 모르고 살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몰랐다.
과연 내가 사랑스럽기는 한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나고 그래서 충분하고 사랑스럽다. 
모두를 납득시킬 이유를 찾을 필요없다.
내 안엔 정말 많은 가능성이 있고 좋은 부분이 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수학을 못한다고 해서 죽고 싶거나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통통하다고 해서 연예인에 비해 못나보여도 내가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에게도 나만의 장점이 있고 나만의 매력이 있다.
나는 건강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을 걱정없이 먹을 수 있고 
살이 쪄도 내가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나를 더 소중히 하기 위해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한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종종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지만 
그를 통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 필요는 없다.
스트레스 풀려고 먹는 거지 스트레스 만들려고 먹는 거 아니잖아!
먹을 땐 맛있게 먹자.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만들어 두자.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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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토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친구들이 승진하고 월급이 오를 때 나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첫 직장을 때려치는 무지막지한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사실은 많이 불안하다. 엄청 엄청 불안하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 끝도 없이 초라해지는 내 자신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인생 뭐 있나 싶어 다 포기하고 예전처럼 먹고 토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자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혼자 일기를 쓰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두와 같아질 필요 없어"



언젠가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동생에게 두둑한 용돈도 주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지 말아야 했다. (사실 여기서 일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 어무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고 남이 주는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처럼 내가 행복해야 남의 행복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내 행복이 가득 담긴 선물을 전할 수 있다. 그러고 싶다. 내가 그냥 그러고 싶어!

메일이나 유튜브 댓글을 읽다 보면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큰 도움을 드릴 수 없어 너무나 죄송스럽다. 나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고 공감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해본다. 부디 행복해 달라고. 행복할 수 있는 기준을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우린 그냥 우리고, 나는 그냥 나다. 내가 가는 길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고 좀 느리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모든 극복의 시작은 나를 믿고 응원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나를 열렬히 응원한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열렬히 응원해주길!
행복해도 괜찮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하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아니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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