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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y 29. 2018

삶은 입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요? -1

취업에 뜻이 없는 한 나그네, 철없는 어른이의 이야기 


한국에 돌아왔다. 일본과 호주를 거쳐 결국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다.

평생은 아니지만 한동안은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곳에 오고야 말았다.

미래도 계획도 가능성도 희박한 깜깜한 터널에 제 발로 들어섰다.


올해로 스물 일곱.

친한 친구들은 직장인 4년차 5년차를 넘기고 있고

(말하기도 지겨운 이 이야기는 나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어미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그에 반해 나는 잠깐 해외취업의 꿈을 품고 (일본에 대한 미련) 잠깐 발음 담궜다 돌아온 게 전부.

심각한 우울로 죽음과 삶의 사이를 오가다 결정한 호주행은 뜻하지 않은 이유로 물거품이 되었고 

약 1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백수입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자족해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 위에 떠다니지만 실상 하고 있는 건 없다.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책을 읽는다.

왜 하는 지 모르겠지만 습관처럼 영어 독해와 일본어 독해 문제집을 풀고

요즘은 청소년 상담사 자격증을 위해 심리학 책을 읽고 있다.

문제집을 구입했지만 너무 오래 손을 놓은 탓에 내용이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6월 전까지는 가볍게 책으로 뇌를 운동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쓰고 나니 뭐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데 없다. 정말 없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이게 대체 무엇을 위한 삶인지 1도 가늠할 수 없다.


회사에 들어가려고도 해봤다.

영어 토익점수나 경험들이 완전 바닥은 아니니까 

입사 서류라도 넣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취업 사이트를 전전했지만

"대체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라는 의문만 생길 뿐이었다.

안다. 

이런 내가 굉장히 한심해보인다는 거.

나도 내가 한심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며 쯧쯧 혀를 차고 있는 당신보다 더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 그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싶었다.

회사에 들어가기엔 돈 안되는 일들을 너무 좋아해. 너무 너무 너무

이번 달이 끝나면 알바를 해야지 (열심히 알바 공고 찾아가며 이력서 넣고 있다.)

하지만 알바는 일시적일 뿐이다.

내 평생 직업이 될 순 없다.

근데 평생 직업이란 게 있어?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직장인이 아닌 어른은 없는 걸까?

회사인이 아닌 어른은 없는 걸까?

나도 그렇게 되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은 어른이 된 나를 붙잡았다.

대학생 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다.

근데 지금 되돌아보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억지스러운 마음이었다.

'어떤 회사의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 참 많이 물어봤지만 

답은 "모르겠다" 였다.


나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러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누구처럼 오지고 지리게 글을 쓸 줄도 몰랐고 

누구처럼 취향을 저격하는 그림을 그릴 줄도 몰랐다.

누구처럼 예쁘지도 않았고

누구처럼 똑똑하지도 않았다.

나는 지극히 평범했고 취업에 있어선 평범 이하였다. 미달이었다.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인생이 끝났으면 싶었고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죽음을 상상했다.

비교하면 끝이 없었다.

죄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런 상태로 몇 년이 흘렀다.



스물여섯의 나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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