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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26. 2018

삶은 입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요? -2

입사해도 불행할 수 있어요. 심지어 더 불행할 수 있지!


지난 5월을 마지막으로 약 4개월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삶은 입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요' 시리즈의 첫 글이 마지막이었는데 입사는 아니지만 나는 일하고 있다.

사실 입사라는 단어가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 뜻하는 건 아닐테니 나도 입사라면 입사를 했는데...

확실히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온 것 같다.


일반 회사에 들어가야 안정적이지


며칠 전, 잠깐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가 술 한잔 거하게 걸치시고 한숨을 쉬시더니 '안정'에 대해 논하셨다.

늘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자려고 누우니 '안정'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맴돌다 맴돌다 안정이 무엇인지 인터넷에 검색까지 했다.


안정 安定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 (네이버 검색)


아, 바뀌어 달라지지 않는 거구나.

별로 대단한 거 아니네?

그러고 다시 잤다.


나는 언제 안정을 느낄까?

바뀌지 않는 상황에도, 계속해서 나아지는 날들이 이어져도 나는 불안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걸까?

다들 이렇게 산다는데 나는 왜이렇게 힘들지? 내가 약한가?'

첫 직장에 들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그런 생각들로 보냈다.

즐거운 때도 많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어딜 가든 나타나는 진상들을 제외하면 손님들 대부분이 친절하셨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는 날은 자꾸만 늘어나고

생리인지 하혈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증세가 지속되었다.

언제든지 삶이 끝나길 원했고

더 이상 미련따윈 없다고 생각했다.


1톤 트럭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날 치고 갔으면 좋겠어.


출근길마다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엔 두려우니 누가 대신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람.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던 안정.

회사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갖게 될 거라던 그 안정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누구는 말하겠지.

1년도 안 버텼는데 어떻게 안정을 느낄 수 있냐고 그땐 다 그런거라고,

하지만 불안을 떠나 죽음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버팀'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모든 것이 "나" 위주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너는 달라?

나는 슬픈데 왜 너는 슬프지 않아?

나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데 왜 너는 아니야?

나는 재밌는데 왜 너는 아니야?


오래 살진 않았지만 27년 살면서 세상엔 모두가 인정하는 통념이 있고

모두가 지켜야 할, 동의하는 옳고 그름이 있다는걸 배웠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신만 옳다' 라는 믿음에 취해있음을 배웠다.

그걸 깨닫고 자기 검열이 더욱 심해지긴 했지만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자는 신념이 생겨 다행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신념도 조금씩 세워나가는 중이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입사와 퇴사였다.


내 안정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


취준생시절 "출근, 퇴근, 월급" 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부러워 생각도 안했던 자퇴와 신용카드 서비스 센터 취업을 준비했었다. 그 일이 정말 하고 싶기는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남들이 하는 출근이 하고 싶었고

남들이 하는 퇴근이 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릴 바에야 뭐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도 지금도 내가 항상 간과하고 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나" 였다.

내 선택에는 늘 내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타인의 나


'나의 나'는 없었다.


어른들은 취업하면 다 해결될거라고 했지만

거긴 나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지 모를 내가 존재했지만 나는 없었다.


나는 묻고 싶다.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안정은 누가 주는 거냐고, 언제 가질 수 있는 거냐고, 그래서 당신들은 안정하냐고

안정해서 행복하냐고 행복하지 않지만 안정하니 참는 거냐고 근데 못 참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냐고

누구는 안정보다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할 수 있지 않냐고.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내일도 행복할 거란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누가 날 죽여줬으면 하는 상상은 많이 줄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틈틈히 자살 사고가 찾아온다.)

설령 내일 행복하지 않더라도 모레는 행복할 거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안정적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불안한 때가 있어도 그 불안에 모든 걸 빼앗기진 않는다.

스스로 일어설 힘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종종 어렵고 벅차다.

하지만 "힘들지 않은 일은 없어" 라는 말이 위안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예전만큼 지옥에 살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삶을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회사에 가고

누구는 가게를 차리고

누구는 글을 쓰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연기를 하고

누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한다.


개개인의 행복과 안정을 남이 논할 수는 없다. 그래선 안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역시 그런 타인의 말들에 흔들려선 안된다.

나는 더 단단해지고 싶다.

아버지의 "안정"에 잠 못드는 밤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더 나답게 살아갈거야.




그럼 여기서 질문,


나다운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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