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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an 05. 2019

삶은 입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요? -부록

나다운 게 뭔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식이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창피하지 않아요?"


식이장애, 우울증, 불안 등을 다루는 유튜버로서 활동한지 1년이 넘었다. 

그 사이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은

창피하지 않나

부끄럽지 않나

두렵지 않나

무섭지 않나

와 같은 "타인의 시선"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그 감정들을 안고 있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희망 혹은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에

더 많은 수를 걸기로 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어느정도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워딩은 아니여서 쓰기 껄끄럽지만 그래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글쎄, 그냥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사람?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애정, 관심과 함께 비난과 편견이 따라온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내가 세상으로 나간 거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다운 게 뭘까?

나다운 걸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먹고 토하는 나"였으니까.

어떤 거짓도 수식어도 달리지 않은 나 자체는 바로 먹고 토하는 아이였다.

그걸 드러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드러냄으로써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 지, 

사람들이 어떤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하지만 고쳐야했다. 바뀌어야했다.

먹고 토하는 나를 드러내고 안녕하지 않으면 나의 모든 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고 말테니까.

(나는 그랬어.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어.)


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혹은 남들에게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드러내세요. 세상에 말하세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인정하자.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자.

그리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지 정하자.

정했다면 아주 작은 걸음부터 기록해나가면 된다.

발을 땅에서 뗀 순간부터 이미 그 걸음은 시작된 거니까.




나는 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주로 부족하고 불안한 주로 모두가 숨기고 싶어하는 민낯을 공개하고 싶어해.

이 세상에 자신이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잖아.

물론 그게 다가 아닐테고

사실은 엄청 외롭고 힘든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여튼 그런 이야길 대놓고 하지는 않잖아.

나는 대놓고 이야기하고 싶어. 통념에 반항하고 싶어.


10년 넘게 식이장애를 앓아왔고

10년 넘게 심각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13년도 전엔 성범죄의 피해자였으며

고등학생 때는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어쩌면 이 세상의 마이너 중의 마이너 그리고 실패자일 수 있다고.


'실패자' 그 틀 안에 아주 오랫동안 갇혀있었어.

사회가 만든 틀과 나 자신이 만든 방 안에서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사랑해야하는 지 모른채 

그저 흐르는 시간을 누군가 멈춰주길 바라며 이도저도 아니게 이어왔어.

그걸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

그래도 버텨 온 시간들도 삶이니 어떻게 그 생을 지금까지 잘 이어 온 것 같아.


근데 더 이상 거기 갇혀있고 싶지 않았어.

실패자일 수 있다면 실패자가 아닐 수도 있잖아.

여전히 남들은 나를 불쌍하다 여기기도 하고

이상하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말들로 상처주려고 해.

틀 안을 벗어나려는 사람에겐 언제나 존재하는 하지만 반드시 끊어내야하는 쇠사슬과 같아.

나는 끊어낼거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지켜갈 거야.


가장 먼저 찾은 건 이런 나 역시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확신과

그 확신을 통해 함께 손을 잡고 나올 그리고 열어 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이야.

그 곳은 글을 쓰는 블로그일 수도 있고

기록된 영상들이 가득한 유튜브 채널일 수도 있어.

그게 어디든 상관없어.

다 소중해.

아주 의미있어.

지금의 삶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어.


나다운 걸 찾는 것.

그 자체가 나다운 게 아닐까?

끊임없이 내가 누군지 질문하고 알아가려는 모습이 꼭 나잖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을 것.

당신의 과거가 당신의 미래까지 잡아 먹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

그런 마음들이 다 나잖아.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습도

자주 우울하고 넘어지는 모습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웃어보이는 나야.


오글거리는 말투로 글을 쓰는 나도 나야.


그렇게 하나 둘 쌓아가고 싶어.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불안하지면 불평만 늘어놓지 않는

마이너이지만 결코 마지막이 아닐 것을 약속해.


나는 틈틈히 이 곳에 안부를 전하러 올거야.


삶은 입사하지 않아도 되고

입사해도 괜찮아.


삶은 입사, 퇴사, 회사로 정의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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