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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09. 2020

행복이 버거운 이유는 나에게 있어

탓하려는 마음을 다그치며 


"헤어지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 물론 얼마 안 가 미치도록 후회하겠지만"


버겁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자주 쓰다 보니 이젠 좋아서 쓰는 것 같다. 

삶은 항상 버거웠다. 즐거운 순간은 불꽃놀이처럼 '팡! 파방' 터지면 그만이었다. 후엔 연기와 냄새만 남을 뿐.  나를 더 힘들게 하기 위한 신의 계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짧고 씁쓸한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그 불꽃놀이마저 사라졌다. 불을 붙이는 것 아니 밖에 나가는 것부터 힘들다. 무기력의 끝자락에 서 있다. 더 몰아세우면 어디로든 떨어질 것 같아. '차라리 떨어지는 게 낫지 않아?' 마음속에서 주인 없는 목소리들이 쿵쿵 문을 두드린다. 거기는 너네 자리가 아닐 텐데, 언제부터 거기 살았어? 물어도 대답은 없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늘 그랬다. 아무리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삶의 답은 누구에게 있어?


E를 만나면 행복하다.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E만 생각한다. "행복하다 그렇지?" 뜬금없는 질문조차 즐겁다. 내 삶에 E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E는 그리고 연애는 항상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서 "You complete me"라는 대사를 던졌을 때, 나는 오열했다. 부러워서 울었다. 다들 알겠지만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나를 배부르게 해 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를 배부르게 할 수 있지. 누군가에게 사랑은 사치인 것이다. 나는 주제에도 없는 사치를 부리는 중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느낀다. 학생 때는 이런 걱정 없이 좋아하는 마음에만 기대 살았었는데 말이야. 


딱히 연애를 그만둔다고 해결책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연애를 그만두면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겠지. 핑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추잡하다. 


하고 싶은 게 없다. 이루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적당히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끝났으면 좋겠다.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싶진 않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 모순이지? 안다. 그래서 못 죽고 있다. 그런 죽음은 없으니까. 나만 생각하며 살고 싶다.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벌고 싶다. 사람들이 보기엔 '저게 무슨 직업이야' 싶어도 그게 무엇이든, 그것만 하며 살고 싶다. 근데 연애를 하면 잘 살아야 될 것 같다. 번듯한 직장도 있어야 하고 뭔가 괜찮은 사람? 대외적으로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상대는? 상관없다. 나는 상관없다. 상대도 그럴까? E, 너는 어때? "만 서른이 되기 전까지 열심히 살자."라는 말에 가끔은 숨이 턱턱 막힌다. 열심히 사는 건 어떤 거야? 열심히 살지 않으며 안되는 거야? 되묻고 싶지만 웃어넘긴다. 나는 네가 나 같았으면 좋겠어. 욕심이 없었으면 좋겠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생각 없어 보인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거든. 근데 내가 봐도 사람들이 보는 나는 형편없을 것 같아. 너도 그렇지? 그러면 너는 날 떠나겠지. 차라리 떠나는 게 나을까?


대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 

비싼 돈을 들여서 갈 만큼 그 일을 하고 싶은 지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10년 넘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타이틀이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가는 거야. 근데 왜 필요할까?...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지 뭐겠어. 헛웃음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의미 없는 오늘과 내일이 이어진다. 버겁다. 삶은 너무 버거워. 자신이 없다. 오랜 고질병이다. 적당히 사는 건 어떤 걸까?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우리는 꼭 뭔가를 이뤄내고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나? 도태되면 안 되나? 가만히 앉아 생각하다 보면 어김없이 죽고 싶어 진다. 아, 제발 나 좀 죽여줘.


이렇게 사는 내가 한심하지? 옆에 누운 E에게 묻는다. 

"아니야 하나도 안 그래"

거짓말, 맴도는 말을 꼭꼭 씹어 삼킨다. ㄱ ㅓ ㅈ ㅣ ㅅ ㅁ ㅏ ㄹ 


언제부턴가 모든 게 귀찮아졌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몰아세웠던 10대와 20대 초반의 잔상이라며 나를 달랬다. 'Burn Out' 이란 이름을 달아 주었다. 다 타버린 마음은 다름없이 그대로다. 태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왜 이름을 번아웃이라 지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새롭게 무언가가 돋아나거나 생기나? 후, 알고 있다. '노력'이란 걸 하겠지. 다시 만들고 세워, 너무 쉽게 타지 않도록 코팅 비슷한 걸 하겠지.  '노력'은 무엇일까? 노오려억 소리 내뱉어 본다. 노오려억, 어떡하지? 울고 싶어 졌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은 언제부터 그랬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혹시 후천적이라면 그 방법을 알려 주지 않을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요" 아,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어?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욕심이 나고 잘하고 싶은 게 생기더라고요" 아, 그러면 너한텐 무언가가 주어진 거야? "네, 당신에겐 없나요?" 음, 모르겠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없어.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신 마음에 숨어 있지 않을까요?" 






- 내가 싫어서 숨었을 텐데 굳이 찾아야 할까? 그런다고 그 꿈들이 행복할까?

- 글쎄요, 찾아줬으면 해서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거든? 근데 남들이 보기엔 아닐 것 같아서 그게 힘들어.

- 이렇게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어요?

- 아니,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생각할까 봐...

- 왜 탓해요? 여전하네.

- 탓이라니? 무슨 말이야?

-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당신도 지금의 당신이 싫잖아요. 왜 애꿎은 E를 걸고넘어져?

-...........

- 지금이 좋으면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러다 헤어지면 결국 거기까지가 최선인 거 아닌가?






알고 있어. 삶이 버거운 이유는 다 나에게 있어. 

오늘도 잠은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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