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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17. 2019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데 왜 참는 것부터 생각해?

섭식장애 n년차의 날들

 


“언니 나 지금 배고픈데 뭐 좀 먹어야 할까? 먹어도 되나?”

“그걸 왜 물어? 배고프면 먹어.”

“진짜? 먹어도 되겠지? 지금 배고픈 거 당연한 거지?”



저녁 7시즈음 되면 허기가 느껴진다. 오후 1시에 점심식사를 마쳤으니 약 6시간 정도 지났다. 배가 고픈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고민한다. 이 정도 허기쯤 참아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그 누구도 나에게 참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이어트 중도 아니고 먹으면 안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지? 자꾸 먹으면 안될 것 같다. 이걸 참는다고 해서 대단한 보상이 날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되레 집에 돌아가자 마자 참고 또 참았던 허기가 폭발하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분노가 치솟아 눈물까지 흘릴 것이다. 결국 배달 음식 어플을 뒤적여 좋아하지도 않는 기름진 음식들을 잔뜩 주문해 폭식을 하고, 정신없이 폭식하고 나면 더부룩한 속 때문에 이리저리 뒹굴다 변기통 앞에 서있을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도 10초 안에 그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 같은 실수와 후회를 반복한다. 


요즘 “직관적 식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멈추는, 아주 당연하고 간단한 식사 습관에 대한 책이다. (책은 꽤 두껍다.) 근데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가 가고 공감도 되는데 내 인생, 식생활에 적용하려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걸 먹어라”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배가 고파도 되는 거야? 배가 고프면 뭘 먹어야 해?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돼? 언제까지 먹어야 해? 등등 질문이 질문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피곤한 과정이 반복될 뿐이다. 


사실 ‘허기’라는 걸 느끼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10년 넘게 허기를 모르고 살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제대로 귀 기울인 적이 없었으니까. 무시하고 외면하기 바빴다. 나는 배고프면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왜 그랬냐고?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한데 가장 큰 이유를 고르자면 “배가 고플 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그리고“너무 뚱뚱해서” 였다. 이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당신, 혹시 나의 동지인가요? 배가 고픈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본디 숨을 쉴 때도 에너지를 소비하고 잠을 잘 때도 에너지를 소비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우리 몸은 살기 위해서, 심장을 움직이고 장기를 움직이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에 누워 세월아~ 내월아~ 하며 머리 속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만 흥얼거려도 그게 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팩트다 팩트!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쓸모 없는 일에도 에너지를 쓰다니’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배로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포인트가 아니라고! 우리가 뭘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배가 고픈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당연한 일이고 배가 고플 땐 ‘우리 몸을 위해서’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인 “너무 뚱뚱해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넘치도록 많지만 앞으로 풀어나갈 썰들이 무궁무진하니 짧게 이야기하겠다. 


“뚱뚱함”의 기준은 어디인가? 나는 뚱뚱한가 통통한가 퉁퉁한가 똥똥한가 오동통한가 너구리인가 (이상해지고 있다.) 우리는 배고플 때 참고 하얀 음식을 멀리하고 탄수화물을 줄이면 TV와 같은 미디어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날씬해질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허위 광고와 세뇌에 속아왔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이거 발라봐라 저거 신어봐라 등등 “지금 모습 그대로 어떻게 살아요?”와 같은 동정과 비아냥이 담긴 그 광고들에 단 한번이라도 “대체 왜 저들처럼 돼야해?”라는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는가? 이젠 초등학생들까지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BEFORE & AFTER에 목을 매는 시대가 되었다. 건강검진시간에 체중계에 올라갈 바에야 버스에 치여 병원에 입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어린 이진솔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가능하다면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음식을 자유롭게 맛있게 맘껏 먹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연예인들의 카더라 식단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누구는 차라리 거식증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배가 고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정말 허기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건 과연 어떤 삶일까?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걸 안 먹어보고 죽어? 라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회가 말하는 예쁨과 아름다움에 당신을 모두 맡겨도 좋은가? 당신의 주체성은 어디에 있지? 배가 고플 뿐인데 거울 앞에 서서 “네 몸뚱이를 봐, 네 꼴을 좀 봐” 라며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김밥 한 줄 사 먹을 때도 타인의 허락과 공감을 구하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배가 고프면 먹자.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먹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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