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Sep 14. 2019

누가 씹다 뱉은 껌보다 못한 사람

우울의 극단


'누가 씹다 뱉은 껌' 

그 껌에게도 미안할 만큼 내가 무의미하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밤이 있다. 하루 종일 행복하다가도 그런 밤이 불쑥 찾아와 불면을 깨운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해도 온몸이 간지럽고 죽고 싶다는 생각 외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밤이 있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곳도 없고 그렇게 온몸을 긁다 보면 내 몸에 붙어 있는 살들마저 죄스럽게 느껴진다. 아아 오늘은 딱 그런 밤이다.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지만 나 따위가 감히 좋아하는 영화를 갖고 있다는 게 우스워서 눈물이 났다. 영화를 끄고 눈을 감았다. 어떤 생각이 찾아올지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저녁 즈음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먹은 것도 없는데 토악질이 올라왔다. 너무 빈속이라 그런가? 라면을 하나 끓였지만 두 숟갈, 세 숟갈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게 고통스럽다. 결국 다 토하고 라면도 버렸다. 토하면 속이 시원했다. 채워진 위를 게우는 일은 언제나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많이 먹고 10분 넘게 토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 그런 날이면 지쳐 잠들곤 했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언제나 뿌연 안갯속에 있는 것 같았다. 토를 하다 보면 얼굴이 간지럽고 실핏줄이 터져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 십상이었다.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한 상태로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고 나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난하며 죽지 못해 살았다. 이젠 그런 자극들마저 익숙하다 못해 우습다. 그럼 긋고 싶어 진다. 아아, 가장 쉬운 도구는 눈썹 칼이나 커터칼 혹은 사무용 칼인데 나는 내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잘 알아서 그런 칼들을 집에 두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눈썹 정리를 안 한지도 반년이 지났구나, 트림이 올라올 때마다 토 냄새가 올라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웬만한 걸로는 아무리 그어봤자 소용없다. 죽지 않는다. 죽고 싶어서 그은 적은 없다. 죽고 싶어서 긋고 싶어 진다기보다 토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응어리들이 피를 보면 해결되는 지경에 이르렀달까? 사실 피를 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무엇도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괴롭다, 버겁다. 언제 올지 모르는 이런 밤을 익숙한 듯 맞이하면서도 전혀 익숙해지지 못한 내가 싫다. 비겁하다고 생각해. 얼굴이 간지럽다. 오랜만에 토를 한 탓이다. 긁고 싶은데 긁으면 피가 날 정도로 긁어버릴 걸 알아서 글을 쓰는 중간중간, 주먹을 쥐고 숫자를 센다. 얼굴에 상처가 난다면 지금보다 더 아득해질 것 같아.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이 울렁거려 먹은 걸 다 토했다고 하니 역시나 "왜 그럴까..." 걱정한다. 걱정시키는 걸 즐길 만큼 강하지 않다. 나는 그냥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를 이어간다. 언제 잘 거야? 언제 올 거야? 만일 내가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애정을 갈구했다면 그는 진작에 나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다행이지, 어느 정도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공인지 모르겠다. 그는 나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어쩐지 나의 우울은 항상 나의 공이다. 한 번도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에게 무턱대고 나의 우울을 함께 짊어져 달라고 말하는 건 너무 최악이지 않나? 15분 중 10분이 침묵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힘내"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힘내고 있어. 그가 호주에서 지낼 때 종종 그의 숨소리를 붙잡았다. 끊고 싶지 않아서, 이대로 혼자가 되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먼저 잠들어도 괜찮으니 제발 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몇 시간이고 그 숨소리를 곁에 두고 밤을 지새웠다. 근데 이젠 그 말도 못 하겠다. 의존적인 모든 게 싫다. 의지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가 없어도 나는 살겠지만 연애도 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반대인 가정도 존재할 수 있다. 그가 없으면 정말이지 죽음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꾸역꾸역 잡고 있는 이성을 한숨에 다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긋고 싶을 때마다 그을지도 모르고 남은 생을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에선 그걸 바라고 있다. 나는 특별하지 않으면 죽고 싶어 지는 병에 걸린 사람 같다.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특별함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이건 사랑인가? 


상처나 흉터 만지기를 좋아한다. 새살이 돋기 전, 딱지가 앉으면 피부가 까끌까끌하고 울퉁불퉁하다. 나는 그걸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몸에 흉을 내는지도 모르겠다. 혀로 핥으면 옅은 피맛이 난다. 이상하게 좋다. 하지만 오늘은 흉을 내지 않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 글을 쓴다.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일을 그만둔 지 벌써 2주나 됐다. 내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억누른 불안들은 이따금씩 밤은 물론이오 아침까지 집어삼킨다. 무능력한 스스로가 싫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지랄 맞은 성질을 버리지 못해서 쉽게 무엇 하나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시작하지 않고 있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글이 돼버릴 테니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자. 나는 어디에 버리면 되지?






온몸이 간지럽다.

긁어도 긁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이 지나도 당연하지 않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