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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08. 2019

시간이 지나도 당연하지 않은 것

너를 만나



이기적이고 불안한 내가 너에게만은 잘하고 싶었어
폴킴 '너를 만나' 中



작년 가을즈음,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을 그다지 열심히 듣지 않았다. '흔한 사랑 노래'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휩싸여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판단했다. 거기다 몇일 지나지 않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발매되어 스트리밍을 돌리느라 다른 곡들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한 방송 프로그램의 예고편에 담긴 이 곡의 라이브 영상을  보게 되었고 짧은 몇 소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이불을 끌어 안고 끄윽끄윽 울었더랬다. 그렇게 약 1년이 지나서야 이 노래를 제대로 듣게 되었는데 한곡 반복 재생으로 설정해두고 하루종일 이 노래만 듣고 있다. 특히 가사가 꼭 내 마음 같아서 나중에 연인을 만나면 노래방에서 불러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통화 중에 "솔아, 나 조금 졸려. 그 노래 불러주면 안돼?" 라는 잠투정 어린 목소리에 못내 반주도 없이 휴대전화를 마이크 삼아 이 노래를 불렀다. 새근 새근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숨소리에 웃음이 났지만 막상 부르기 시작하니 또 다시 가사에 마음이 이입되어 끝까지 불렀다. "잘자" 대답없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숨소리를 듣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사귀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호주로 떠났다. 곁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떠난 탓에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항상 꺼낼 수 없는 불안이 가득했다.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 별 것 아닌 질문도 건네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말에 얼만큼의 진심이 담겼는 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정말 사귀고 있는 게 맞나? 매일 전화를 하면서도 막막한 이 관계의 불투명성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그가 떠난지 약 3개월이 됬을 때, 나는 그를 만나러 호주로 떠났다.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아침부터 그 다음날 아침, 마지막 날 아침까지 함께였다. 나를 위해 일정을 바꾸고 호텔을 알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위해 고민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날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이불을 덮고 전화론 하지 못했던 말들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많이 울었다.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기억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거짓말과 배신의 상처는 항상 나를 의심 속에 살게 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말도, 나를 아낀다는 말도 되레 무섭기만 했다. 진심을 건네도 돌아오는 건 "너를 위해서" 라는 가면을 쓴 이기심뿐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상대가 내게 주는 것들을 재고 따지며 행동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고 싶지 않았다. 딱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는 '위해서'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로 나를 속였고 나는 속았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운명이야, 우리 꼭 결혼하자,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자, 나는 절대 너를 포기하지 않을거야" 구멍난 튜브처럼 쪼그라드는 마음과 관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나를 걸었고 결국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졌다. 우리의 미래는 의심할 겨를없이 함께일거라던 사람들은 쉽게 그 말을 잊었다. 기억하는 내가 순진하다는 듯이 정말 그 말을 믿었냐고 되물었다. 너무 미웠지만 타인의 탓만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내가 먼저 믿음을 저버릴 수도 있는 게 '사랑'이니까 내가 더 똑똑해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의심하고 따진다고 똑똑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쿨한 척하고 무심한 척하며 본심을 숨기기 바빴는데 그는 재촉하지 않고 "솔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좋겠어. 나를 믿고 솔직해지면 좋겠어." 라는 말로 나를 기다렸다. 그는 나의 의심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세상의 많은 부분이 유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벌써 그를 만나지 3년째가 되었다. 우린 약 1년의 장거리를 무탈하게 보냈고 나는 더 이상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의심을 멈췄다. 아직 혼자 있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를 만나, 너를 만나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무작정 도망치기보다 조금 더 견디고 기다려보자고 다독일 수 있을만큼 단단해졌다. 항상 집착하고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기다리기만 하던 나는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믿음과 함께 쌓아온 시간들에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말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연애나 사람감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는 나의 용기가 되었고 불행만 쫓던 내 인생의 방향을 틀게 한 찬란한 빛임에 틀림없다. "우린 달라, 우리 다를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르고 다르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헤어짐은 여전히 두렵고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 지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모를 일이지만, 그의 사랑과 우리가 주고 받는 지금의 마음엔 200%의 진심이 담겨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혹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는데 대뜸 남자친구와 내 사진을 들고 오더니 (내 방 책상에 올려둔 액자)물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 언제 소개시켜 줄거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냐고 물으니 고마워서 맛있는 거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한동안은 엄마에게 그를 보여줄 일은 없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그가 3년만에 어렵사리, 말까지 더듬어 가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중에, 몇년 뒤...? 언..언젠가 뵙게 될텐데 좀 더 든든한 모습으로 뵙고 싶어." 조심스럽기만한 목소리에 웃음이 났지만 두 눈을 꾹 감고 참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밤,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바라며 온갖 질문을 했지만 그는 항상 목석 같았다. 그게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서운하기도 했다. "솔이 바라는 대답, 나는 지금 못해." 하지만 서운하다고 해서 그의 사랑이 덜한 건 아니니까, 이번엔 내가 기다릴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를 만나길 잘했어.


우리의 결말이 어떻든 간에 불안한 지금이라도 영원하고 싶으니까.






+) 마지막 문장은 폴킴의 "너를 만나" 라는 곡의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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