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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07. 2019

사랑이 있어서 살아낸 날들

거짓이어도 믿었다면 사랑이겠지요.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사랑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


타인에게 들어본 적은 없지만 스스로 자주 하는 질문이다. 항상 기댈 곳 없이 여기 저기 감정을 방치하거나 숨기며 살아왔다. 스스로가 '자주 우울해지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지도 몇 해 지나지 않았다. 감정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긴데 그 중에서도 사랑은 나에게 가장 어려우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무엇이 사랑인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때, '이게 사랑인가? 이게 좋아하는 마음인가?' 헷갈린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 아이 옆에 서서 두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는 경험을 했고 나는 그게 철썩같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솔직해지기는커녕 씩씩한 척 하기 바빴고 눈을 마주하는 게 어려운 그 마음이 곧 사랑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첫사랑은 실수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하나의 동경에 가까웠다. 마음이 가난했던 시절, 누구 하나 쉽게 두드리지 않던 마음의 문을 호기심에 두드렸던 이에 대한 착각 그리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쏟아부었던 감정과 시간은 사랑이라 칭하기엔 이기적이었고 지나치게 배려가 많았다. 나는 모 아니면 도인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올인하거나 도망가거나,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학교 수업엔 사랑이란 과목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책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주로 인터넷 소설이나 만화책이 교과서였다. 이미 완성된 드라마나 영화엔 나를 대입할 수가 없어서 글을 제일 좋아했다. 우연히 내 이름이 주인공인 소설을 찾으면 내가 그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대사를 소리내어 읽어보고 온갖 상상을 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곳에서 사랑은 인생의 전부였다. 모두가 사랑에 매달렸고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구원이었고 보잘 것 없는 나를 향한 유일한 주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랑한다는 말에 약했다. 그 말에 얼만큼의 진심이 담겨 있는 지따위는 알바가 아니었다. 그 말 하나면 아무리 큰 잘못이라도 용서하고 싶었고 용서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날 떠날 것 같았고 사랑이 떠나면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돌아갈 뿐일테니 어떻게든 이해했고 희생했고 그렇게 사랑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온전히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나'가 누군지도 몰랐고 애착도 없었기 때문에 나의 취향이나 기호를 버리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상하지? 그러면서 한번도 상대가 희생해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취해있었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버릴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히어로'가 되는 일에 취해있었다. 사랑한게 아니라 주워 들은 사랑을 연기하고 있었다.


최악의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전부 거짓이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리라는 단어의 울림이 좋았고 손잡고 걷는 날엔 온기가 얼굴까지 전해져 하루종일 열병이 난 사람처럼 뜨거웠다. 헤어지자는 말에 심장이 터질듯이 아팠고 토해내듯 울었다.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야할 지 몰랐다. 싸울 때마다 솔직해지기보단 빨리 끝내고 싶어서 도망쳤다. 더 깊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꾸며낸 감정은 나약했다. 나는 나에게도 솔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연애가 첫사랑을 시작으로 몇년이나 이어졌다. 쉽게 만났고 쉽게 헤어졌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연인들이 있고 그걸 연애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만남도 많았다. 잠깐 물건을 맡겨두고 찾아가는 임시 보관함처럼 내 연애는 항상 일시적이었다. 순간 순간이 쌓여 우리의 시간이 된다는 걸 몰랐고 그 사이엔 다툼도 있을 수 있고 침묵도 있을 수 있음을 몰랐다. '신뢰', '믿음'이라는 단어가 사랑 옆에 없으면 안된다는 것도 몰랐다.


모르는 것 투성이였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고 그저 취하고 싶었다.


이별은 곧 버림받는 일이었지만 금새 다른 사람을 찾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별로 끌고 갔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 들켰거나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이 버거워서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겠거니 싶었다. 다음엔 더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착도 연습했고 질투도 연습했다. 이렇게 말하면 감ㅈ정없는 로봇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애달픈 감정 제외하고 사랑에 존재하는 것들이 전부 어려웠다. 그래서 배워서 따라했고 그러다보면 그 감정이 정말 내 것이 되기도 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지 아닌 지보다 내가 잘하고 있는 지가 중요했다. 정말이지, 잘하고 싶었다. 성공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상대의 자랑이 되기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상대를 몰아 세우기도 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를 좋은 여자라고 칭찬했지만 나는 되레 그 때의 연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진짜 찾아가서 사과를 하면 너무 웃기겠지만 그냥 그런 마음이 든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달라지지 못한 채, 가짜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명만 가득한 글이 되었지만 기댈 곳이 있어서 살 수 있었고 지옥같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내 사랑의 상대가 되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잘못된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통해 내 존재를 인정받았고 다정하고 뜨거운 시선에 위로받았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나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에 기대는 나를 욕할 수 없다. 20대 초반의 이진솔은 10대 이진솔이 꿈꿨던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을 뜰 때마다 똑같은 감옥이었다. 가끔 찾아오는 봄같은 시간엔 항상 사랑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할 수 있고 안을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끝끝내 모두가 무너지고 실수만 남았지만 사랑을 연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스스로 하면서도 항상 질문에서 그치고 만다.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 의존을 멈출 순 없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덜 의존하고 덜 취하고 덜 부담주고 싶지만

덜할 것만 생각하는 게 과연 사랑일까 싶다.

결국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다르냐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이 한 페이지에 담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부끄럽지만 실수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어쩌면 동경도 사랑이고 착각도 사랑이고 연기도 사랑일 지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자. 글을 쓰는 내내 와, 진짜 엉망진창이었구나 싶은데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많이 아주 많이 덕분에 살아냈습니다.


하나 둘, 깨달으면서 더 잘 사랑하고 싶었고 진짜 사랑하고 싶었어요.

사랑이 있어서 살 수 있었으니까 계속 사랑을 생각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사랑이 전부인것처럼 굴겠지요.

그리고 그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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