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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26. 2019

떡볶이 좋아하세요?

섭식장애 n년차의 날들

떡볶이 좋아하세요?

 

초등학생 때 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컵 떡볶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이 글을 향해 손을 뻗어주세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당신과 하이 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도장을 찍어 놓았으니까요. 


요즘은 떡볶이 하면 코미디언 신동엽씨가 광고하는 엽떡(동대문 엽기 떡볶이)가 대세인 듯하다. 떡볶이가 그간 너무 많이 발전해서 위화감이 느껴 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떡볶이의 발전마저 위대하게 느끼는 떡볶이 러버 그리고 한편으론 떡볶이가 토하기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섭식장애 환자다. 갑자기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왜 토 이야기를 하나 싶겠지만 섭식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토하기 좋은 음식, 토하기 편한 음식이 있을 거다. 나에겐 주로 비빔밥, 떡볶이, 라면, 짜장면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떡볶이는 주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날을 위한 메뉴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화가 나고 스트레스 받는 날엔 못 먹어도 고! 매운 음식을 찾는다. 닭발, 불족발, 엽떡, 불닭볶음면과 같은? 전부 다 좋아하지만 입맛이 어린이 입맛이라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그런 내게 떡볶이는 레벨 1과 같아서 화나고 스트레스 받는 날엔 무조건 떡볶이를 먹는다.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는 신전 떡볶이! 단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무조건 세트로 주문한다. 튀김, 김밥, 떡볶이 그리고 쿨피스까지, 매우 호화로운 메뉴 선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음식이 도착하면 고민이 시작된다. ‘정말 먹어도 될까? 이거 먹으면 무조건 토할 것 같은데?’ 예전 같았으면 고민도 안 했겠지만 극복 3년차인 섭식장애 베테랑은 그래도 예의상 고민 정도는 해준다. 마음이 좀 가라앉고 나서 먹을까 싶으면 내면의 이진솔이 소리친다. “젠장, 오늘 죽도록 힘들었는데 이거 한번 먹고 토한다고 세상이 무너져???” 


무너진다. 먹다 보면 눈물이 난다. ‘속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게 고작 먹고 토하는 거라고?’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미 먹기 시작한 이상 무조건 끝을 봐야 한다. 끝을 봐야 토할 때도 마음이 편하다. 끝까지 먹고 끝까지 토하면 되니까. 매운 음식을 먹고 토하면 식도가 따끔따끔하다. 그 따끔함마저 쾌락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떡볶이를 좋아한다.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 아니다. 더 강한 자극과 고통 그리고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토하는 행위를 ‘자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자해하면 다들 손목을 긋거나 몸에 상처내는 일을 생각하는데 어떤 형태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모든 행위를 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토 역시 자해가 아닐까? 목구멍이 따갑게 올라오는 음식물들과 위액을 토해내며 “그래, 너는 결국 이렇게 살 수 박에 없어” 라고 단정짓는 나의 삶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절벽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친구들이 떡볶이 좋아해? 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따가운 식도를 떠올린다. 빠알간 양념과 함께 올라오는 매운 맛, 그 매움이 버거워 기침까지 하며 토를 하는 변기통 앞의 나. 위부터 시작해서 온 장기가 매운 맛에 절은 듯 아프고, 그 고통을 즐기는 지경에 이른 내가 있다.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 


“떡볶이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나는 항상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답해왔지만 사실 내게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먹는 음식들은 전부 구토와 연결되어 있다. 밀떡과 쌀떡을 구분할 줄도 모르면서 구분해야 의심받지 않을 것 같아 굳이 공부까지 하며 떡볶이를 먹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그렇게 밖에 먹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섭식장애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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