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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04. 2019

스무살, 기숙사, 이불 속 가득 숨긴 과자들

섭식장애 n년차의 날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내내 일본 유학을 준비했었다.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아서 혼자 서울에 갔다. 유학원을 찾아가 상담도 받고 일본어학교부터 지원하고 싶은 대학교까지, 인쇄물이 상자 한 박스는 족히 될 정도로 열심히 찾아보고 준비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가족이, 내가 속해 있는 가족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엄마는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우리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생 숨기고 싶었다던 그 이야기는 나를 엄마에게서 멀어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일본 유학을 포기했고 3일 내내 방에 틀어 박혀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은 가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왜 가야하고, 간다고 해도 어떤 대학을 가야할 지 막막했다. 친구들이 내신을 관리하고 모의고사에 울고 웃을 때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성적도 엉망이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나름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내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친 성적을 갖고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된 거 대학은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 몇 년 뒤라도 좋으니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초에 엄마가 그 이야기를 꺼낸 건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하나의 작전이었기에 “딱 한 학기만 다녀보자”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집에 돈이 남아도냐, 어차피 다니지도 않을 건데 한 학기 다녀서 뭐하냐 라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굳건했다. 나는 그렇게 담임 선생님에게 모든 걸 맡겼고 “진솔이 너는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까 상담학과에 가보자”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충 끼워 맞춘 말들에 속아 대학에 갔다.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 기숙사 생활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방을 썼는데 나쁘지 않은 경험 같았다. 어차피 곧 그만둘 거니까, 학점에도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1학기를 잘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했다. 밤마다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신입생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마음은 엉망이었다.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은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단체 생활에서도 나의 섭식장애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되레 심해지기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숙사 내 화장실의 변기는 꽤 오래된 타입으로 물 내리는 버튼이 누르고 있으면 계-속 흘러내려가는 타입이었다. 소리도 커서 웩웩 하는 소리도 잘 안 들릴 것 같았다. (물론 다 들렸겠지만) 그래서 더 편하게 토할 수 있었다. 집에서 토할 땐 항상 물을 틀어 놓고 짧은 시간 내에 빨리 토를 해야 해서 힘들었는데 학교에선 나름 편했다. 사람들이 많이 없는 새벽 시간대를 노렸다. 그래서 내 침대 이불 속은 항상 과자들로 가득했다. 낮에는 강의실 옆 화장실을 주로 이용했고 점심시간엔 학식 화장실을 이용했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맘껏 토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기숙사 화장실에서 토하는 시간이 제일 편했다. 수업이 끝나고 방에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까먹었다. 룸메들은 “또 먹어? 초코가 그렇게 좋아?” 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초코가 세상에서 제일이지” 라며 맛있게 먹고 또 먹었다. 룸메들이 잠든 늦은 밤에도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몽쉘이나 오예스를 먹었다. 그걸로 부족하면 기숙사 매점에 가서 삼각 김밥이나 핫바등을 사서 먹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먹지 않는 시간은 전부 지옥같았다. 


먹는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허겁지겁 먹을 뿐이었다.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었으니까, 시간을 채우기 위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당시엔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난장판이었다. 내 인생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어렴풋이 앞으로 영영 일본 유학 따위 떠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나를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버텨온 시간들이 전부 짓밟힌 기분이었다. 그리고 짓밟힌 채 하루, 이틀 아득바득 살아갈 미래가 끔찍했다.


매점에 가서 이것 저것 사 들고 올때마다 불안했다. 혹시 룸메들이 알면 어떡하지? 매점 아주머니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혼자 몽쉘 12입 한 박스를 매일 매일 클리어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몽쉘 한 박스를 다 먹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겨 넣으면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래서 항상 몇 박스씩 사서 옷장이나 이불 속에 숨겨두었다. 어떤 날은 빨리 방으로 돌아가 숨겨둔 과자를 다 먹어 치우고 싶은 충동에 수업을 듣지 않고 룸메들이 없는 시간에 맞춰 방에 가서 미친듯이 폭식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변기 앞으로 돌아갔다.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공간, 다른 어디도 아닌 화장실 변기 앞이었다. 용돈의 8할을 식비에 썼고 그 결과는 전부 배설물 혹은 토사물이 되어 어디론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나는 결국 1학기가 끝나자마자 휴학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룸메들 몰래 이불을 털 때마다 날리던 과자 부스러기들을 보면서 이대로 계속 학교를 다니면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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