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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Nov 03. 2019

사실 전 뷔페를 좋아하지 않아요.

섭식장애 n년차의 날들

뷔페에 가면 꼭 열 그릇씩 쌓아놓고 사람들이 “대박… 장난 아니네”라고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런 걸 다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고 하나? 하지만 돌이켜 보면 자존심이라기엔 너무 작고 어쩌면 찌질한 자격지심이었다. 


 친구들은 “진솔이는 저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쪄.”라며 놀라워했고 나는 그들이 나를 부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른 몸을 원하고 살을 빼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게 당연한 사회였으니,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진 않다.) 그 부러움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가치있는 평가였다. 그런 걸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들에 비해 내가 턱없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뭐라도 좋으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걸 갖고 싶었다. 


 우리 집은 모자라진 않았지만 부자는 아니었고 나는 공부에서도 꼴찌는 아니었지만 1등도 아니었다. 어중간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서 평범하지도 못한 돌연변이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살에 집착했다. 나는 애초에 살 때문에 먹토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후에 이야기할 테지만 나에게 먹토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토를 하고 계속 토를 하니 소화되는 음식이나 영양분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할 땐 물까지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의 수분이 마르고 근육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그렇게 보였다. 먹는 건 오히려 친구들보다 많이 먹는 편이었으니 남들이 보기엔‘먹어도 살 안 찌는 체질’이었다. 하지만 먹토로 빠지는 살에는 한계가 있었다. 영양분이 적긴 하지만 먹고 토한다고 해서 토한 음식이 ‘안 먹은 음식’ 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먹토를 계속하다 보면 몸이‘기아 상태’와 비슷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몸은 아주 작은 양이라도 영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애를 쓰고 그것들이 근육이나 에너지로 소비되기보다 지방이 되어 몸에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먹토는 얼굴형, 특히 침샘과 턱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얼굴이 평소보다 붓게 되고 독소가 쌓여 피부까지 뒤집어진다. 나중엔 온몸이 붓기도 했다. 몸무게는 줄어들지 몰라도 겉으로 보이는 내 몸은 오히려 더 뚱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거식증이 찾아왔다. 먹는 게 너무나 불안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어떻게든 잘 먹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관리하지 않아도 당연히 마른 사람에 대한 동경, 그 동경을 위한 나의 노력은 거짓말로 가득했다. 


뷔페는 어린 나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식당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뽕을 뽑아야 해! 와 같은? 그리고 뷔페는 몇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먹는, 크고 넓은 무서운 공간이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을 텐데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 것 같았다. 누가 누가 많이 먹고 맛있게 먹고 살이 찌지 않는지 경쟁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샐러드보다 기름진 음식들을 주로 먹었다. 하나라도 빠짐없이 다 먹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디저트까지 욱여넣기 바빴다. 그래서 뷔페에 가는 날이면 족히 다섯 번 이상은 화장실에 가야 했다. 하지만 너무 자주 화장실에 가면 티가 날 것 같아서 음식을 먹으며 주문을 외웠다. ‘내려가지 마, 내려가지 마, 소화하면 안 돼, 참아야 해’ 과연 그게 소용이 있었는 진 모르겠지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나? 정말 위 직전에서 음식들이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지만 사실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았다. 언제 어떤 타이밍에 화장실에 가면 가장 자연스러울까, 그것만 생각했다. 

친구들이 들고 온 접시의 음식들을 내 것과 비교했고 마치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사람처럼 “난 아직 더 먹어야 할 것 같아!!”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음료수를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화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토했다. 제일 처음 먹은 음식을 기억하고 그 음식이 나올 때까지 변기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물을 많이 먹어야 토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화장실 수돗물을 마시고 토하기도 했다. 비참하지만 그땐 비참한 것보다 그렇게 사는 게 내 인생이라는 확신이 더욱 컸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자리로 돌아가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음식을 먹었다. 마치 음료수를 가지러 갔다가 더 먹고 싶어서 음식을 퍼오느라 늦은 사람처럼 연기했다. 하지만 그 연기는 절대 완벽할 수 없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함께 뷔페를 가면서 내가 먹고 토하는 것 같다는 의심을 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그만 먹어야 할 타이밍인데 숟가락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먹자마자 바로 자리를 떠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와서 밝게 웃으며 음식을 먹는 나를 보면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단다. 그게 나한테는 너무 절실한 일인 것 같아서 혹시나 자신의 말 한마디가 나를 무너지게 할 까 봐 두려워서.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들에게 섭식장애에 대해 고백한 후부터는 뷔페는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굳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뷔페에 가도 지불한 돈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올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특별한 날 혹은 꼭 가야만 하는 날 (결혼식) 외엔 가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뷔페 좋아하세요? 뷔페 가면 뭐 드세요?”라고 물으면 “제가 뷔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한다. 솔직하게 대답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다. 그리고 건물 내 공중화장실에서 변기통을 붙잡고 울던 내가 생각난다. 거짓말로 가득했던 지난 삶이 아득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을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좋아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냥 뷔페에 가서 다 먹어요~”라고 대답하며 뿌듯해하던 나는 속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를 제일 먼저 속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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