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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25. 2020

아빠를 왜 싫어해?

나는 계속 싫어할 건데

2월 24일, 자취가 끝났다.

끝나자마자 기숙사에 입실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19 탓에 개강도 기숙사 입실도 2주나 미뤄졌다. 갈 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는 본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1년 동안 나와 살면서 집에서 잔 횟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고 아빠 얼굴을 본 횟수는 그것보다 적었으니, 애써 벌려 놓은 아빠와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고 엉망이 될 게 뻔히 눈에 보였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나는 아빠를 싫어한다.


어렸을 땐 좋아했던 것 같다. 말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괜찮은 날이면 등산도 데려가 주었고 우리 딸 우리 딸 하며 주변 어른들에게 자랑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마저도 까마득하다. 쉽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사람이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의 경상도 남자가 그렇듯 "내가 낸데"와 "남자가 하는 말에 어디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언어폭력이 신체폭력으로 번지는  한순간이었다. 한번 주먹을 휘두른 사람은 주먹이  말이냐 그걸론 부족했는지 언제부턴가 쉽게 칼을 들었다. 엄마와 나 혹은 동생이 흘린 피와 부서진 가구들로 집이 엉망인 날들이 이어졌고 엄마가 없는 날엔 나와 동생이서 아빠와 맞서야 했다. 나는 대외적으론 착하고 얌전한 아이였지만 집에서는 달랐다. 어렸을 때 보고 자란 게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진다'여서 인지 손으로 창문을 깨기도 하고 의자를 방문에 던지는 등 아빠 못지않게 폭력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어린 10대 여자아이가 성인 남자를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엔 다리에 금이 가거나 맞다가 기절하고 깨어나니 여전히 맞고 있는 뭐,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아빠를 몇 번이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그가 나의 보호자란 이유로 별 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딱 한번 칼이 거실에 나뒹구는 걸 본 경찰이 몇백 미터 내 접근 금지 처분을 내린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나한테 아빠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일 수밖에.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끝날 줄 알았던 악몽이 20살이 넘어도 이어진다는 걸 깨달은 날부터 나는 연기를 그만뒀다. 나는 지금도 아빠에게 "아빠 나는 아빠가 진짜 싫어, 내가 나중에 일해서 돈을 번대도 아빠한테 줄 돈은 없어."라고 말하고 "아빠는 나랑 잘 지내고 싶겠지만 나는 싫어. 나는 아빠를 죽어서도 미워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빠는 "대체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라며 화를 낸다. 다행히 예전처럼 옷을 찢고 물건을 부술만한 기력이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의 고함엔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트라우마라는 건 그렇게 나에게 왔고 나와 함께 자랐다.


나를 위해서 집을 나왔다. 엄마 때문이기도 했다. 아빠와 부딪히는 나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들어했다. 엄마는 내게 용서하라고 했다. 나를 위해서 내려놓으면 안 되겠냐고, 이제 그만 잘 지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니,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2주가량을 집에서 지내게 된 지금도 엄마는 나에게 아빠를 용서하라고 한다.




니 아빠도 많이 변했어, 예전이랑 완전 다른 사람이야

나는 아빠가 변한 게 반갑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고마운 마음은 더욱이 없다. 아빠는 모든 폭력을 부정했다. 자신은 엄마는 물론이오 나와 동생에게 손도 댄 적 없다고, 억울하다며 화를 냈다.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냐고 억울해했다. 나는 그 꼴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떻게 받아들여? 내 10대가 전부 엉망이 되었는데? 10대만이 아니라 20대도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무력함을 느껴야 했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쉬워?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면 나중에 후회해.
남 미워하면서 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사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다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녔다. 근데 그건 억지였다. 책에서도 tv에서도 다들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 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그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누가 위로해줘? 나의 외로움, 서러움, 억울함은 누가 알아줘? 내가 용서하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편해지겠지만 나는? 나는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아빠 얼굴을 보면 구역질이 났고 자해하고 싶었다. 내가 아빠의 자식이라는 게 미칠 듯이 역겨워서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모른다.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며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하기도 했었다.

전부 지옥이었다.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용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누굴 위해서 하는 용서가 과연 용서일까? 나는 그렇게 용서하길 포기했다. 미우면 미운채로 두기로 했다. 그게 더 마음 편했다.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인정 욕구도 버렸다. 나는 아빠가 싫으니까 싫은 대로 살면 그만이야.


사람들은 종종 "착함"을 강요한다. 근데 용서가 착한 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

나를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기꺼이 착한 사람이길 포기하겠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누구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없다.




"엄마, 나는 계속 아빠를 미워할 거야. 나한테 아빠를 미워할 수 있는 기회까지 뺏어가면 내가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

"10년이 다 돼가는데 왜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니"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아빠가 잊었다면 내가 더 열심히 기억할 거야. 아빠가 잊었다고 해서 그게 없던 일이 돼? 엄마는 그게 어떻게 돼? 나는 절대 못해 아니 안 해.'

"네가 힘들잖아"

"하나도 안 힘들어. 아빠를 맘껏 미워할 수 있게 내버려 둬."




스물아홉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를 마주하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죽고 싶고 죽고 싶고 죽는 것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만다.

스물아홉이 되었다.

적어도 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나를 쫓아다닐 것 같았던 그 무거운 시간을 과거에 두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다.

더디지만 그래서 남들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하지만 나는 열심히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지나칠 수 없는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달랜다.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겠지. 그때도 나는 아빠를 싫어할 수 있다. 싫어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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