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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15. 2020

사랑에 익숙해지면 소중한 걸 잃어

너 혹은 나 


두 볼을 얼얼하게 만들던 바람도 이제 조금 반갑다. 3월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조금씩 봄내음을 풍긴다. 이른 새벽,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집을 나섰다. 편의점은 약 2분 거리, 코로나 때문인지, 덕인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원없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중이기때문에 짧은 2분도 외출이라면 외출이다. 

E는 자고 있을까? 전화를 걸까했지만 애매한 시간이라 카톡만 남기기로 한다. 


"나 자다가 깼어, 자?" 


끌리는 아이스크림이 없어 가장 무난한 초코 아이스크림을 샀다. 안 먹은지 오래 되서 그런지 혀에 닿는 순간 인위적인 단맛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세입 정도 먹었을까? 포장지로 입구를 막고 다시 고이 접어 냉동실에 숨겨 두었다. 부디 너무 늦게 만나지 말자 우리. "많이 먹고 싶었나보네" 그새 카톡을 읽었는지 전화벨이 울린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는 말에 위험한데... 라는 귀여운 잔소리가 이어진다. 이상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왜 간섭하냐고 짜증을 부렸을텐데 E가 하면 기분이 좋다. (불효녀는 웁니다.) 먹고 잘거냐는 물음에 애매한 웃음으로 답하자 "나도 자지 말까?" 잠에 가득 취한 목소리로 묻는다. 진심이든 아니든, 그냥 하는 소리라고 해도 툭 건네진 배려는 나를 웃게 한다.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나는 괜찮으니까 먼저 자." 그렇게 내일 보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어언 4년이다. 

1년을 막 넘길 때만 해도 "우와 벌써 1년이야!!" 라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2년, 3년, 4년 쌓일수록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햇수를 세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아 그만둬야지 싶다. 아, 그런 생각이 많이 늘었다. 죽어라 의미를 찾아 부여하던 것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알아서 멀어지는 건지, 내가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덤덤해지는 건 확실하다. 무덤덤해지면 당연해지고 당연해지면 꼭 실수를 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 투성이다. 



왜 전화를 안해? 내가 그렇게 갔으면 전화를 해서 잡아야지!


내가 한 말이지만 너무 진부하다. 진부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그땐 정말 그랬다. 이틀 전이었나? 별 건 아니지만 별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있었다.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알만한 일이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부리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수화기 건너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없었던 서러움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 나온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사람이 어쩜 그러냐고 눈물까지 흘린다. 울고 싶지 않은데 꼭 울고 만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항상 눈물이 필요한가보다. 그래도 전화였으니 망정이지 면대면이었으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다행인 것 같다. 누구 하나라도 서로의 감정에 익숙'만' 했더라면 별 것 아닌 일로 시작된 이 다툼이 헤어짐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익숙하다'는 건 과연 얼마나 나쁜걸까?


익숙함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 익숙함이 상대의 감정보다 위에 섰을 때, 그때 우리는 익숙함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다 안다는 듯이, 너는 항상 왜 그러냐는듯이 이야길 하겠지. 더 이상 서투르지 않다고 착각하며 내가 아는 상대방이 전부인양, 내가 정답인 것처럼 굴겠지. 그래서 익숙함이 무섭다. 29년을 나로 살아도 날 모르겠는데 '연인'이라는 관계를 지나치게 믿고 있는 건 아닌가?  문득 반성의 길로 접어 들었다. 


 관계에서 '긴장감'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음식을 싫어하고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지 등등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쌓인 데이터는 신뢰할만 하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늘, 언제나 맞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인간의 취향이란 쉽게 혹은 갑자기 변하곤 하니까. 그럴 때 익숙함이 앞선다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한다. "왜?" 상대방을 향해 활-짝 열려 있던 마음이 달라졌다. 변화가 당황스러울 때즈음, 나는 그 시기를 "권태"라 부른다.


관계에 있어서 발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이대로 좋아" 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항상 그대로일 수 있을까, 관계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 속의 개인이 변하면 자연스레 '우리'도 변하게 될텐데 말이다. 그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매번 긴장하며 사랑할 수 있겠어? 쉬고 싶고 기대고 싶고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off의 상태로 있고 싶지 않나. 하지만 상대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오로지 상대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 익숙해지면 그렇게 소중한 걸 잃게 된다. 유일한 안식처 혹은 탈출구로 부르던 사랑을 가벼이 여겨 놓칠 수도 있다. 반대로 나를 가벼이 여기는 상대때문에 스스로를 잃을 수도 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기를 쓰고 애를 쓰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릴 수도 있다. 사랑은 사랑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같으면 좋겠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바람을 갖고 사랑하고 있다. 

이뤄지지 않을 바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비슷한 부분을 발견하면 기쁘고 다른 부분에 당황하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이 가진 가장 매력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매일이 새롭진 않지만 이따금씩 만나는 새로움이 반갑다. '내가 아는 그는 이럴거야, 이렇지 않을거야' 는 내 예상일 뿐이다. 그 예상을 익숙함에 속아 정답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 권태 속에서도 바람이 불면 시원하다 느끼고 싶고 비가 오면 피하고 싶다. 


상대의 작고 사소한 부분에 이유를 묻기보다 조용히 들여다 보며 함께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여전히 부족한 나는 오늘도 잠깐, 아주 잠깐 착각에 발을 담궜지만 익숙함에 지지 않기로 다짐한다.

사랑은 사랑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더 나은 우리를 위할 순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실수 투성이지만 어쩌면 실수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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