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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Oct 20. 2020

엄마 나 똥 쌌어!

슬픈데 웃긴 그 이름 똥. 똥. 똥.

서울대학병원에서 갑상선 유두암과 전이된 림프절들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친정으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날도 엄마는 무엇을 먹일까 고민을 하며 한상을 차리셨다.


"엄마, 엄마 반찬은 어쩜 이렇게 하나 같이 맛있지? 특히 이 가지 말이야"


우리 엄마의 전매특허는 가지볶음이다. 요리 과정을 수도 없이 옆에서 보고 들었지만 집에 와서 혼자 해보면 엄마의 그 손맛이 안 난다. 물컹한 가지 대신 쫀득한 가지 식감에 들기름이 더해져 윤기가 좔좔한데 이건 안 먹어보면 상상할 수 없는 맛이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보내던 중 엄마는 몸도 마음도 힘든 딸내미를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단다. 세상살이와 단절된 지 조금 돼서 그런가 엄마의 얘기가 어찌나 웃기는지 밥 먹다 말고 박장대소를 했다. 시원하게 터진 웃음과 함께 아래쪽에도 시원하게 뭔가가 터졌다.


'어! 이거 뭐지? 나오겠다는 예고도 없이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이거 반칙인데'


미처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전에 장 속에서 그녀석들이 탈출했다. 한마디로 똥 쌌다. 33살에 다 큰 어른이 밥 먹다가 똥 싼 얘기는 처음 들어보고 처음 겪어본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화장실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웃다 울다 했다. 혼자 조용히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하는데

'이거 혼자 괄약근 조절도 못하게 되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걱정을 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그날의 참사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체의 빠른 적응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불상사가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갑상선암 제거 수술 시 육안으로 보이는 암덩어리들은 모두 떼어냈지만 암세포가 워낙 작은지라 혹시나 남아있을 미세 잔존암이 다시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씬지로이드를 용량을 높게 처방한다. 한동안 갑상선 호르몬 고용량 복용으로 약간의 갑상선 기능 항진증 증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증상

식욕이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체중이 감소할  있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맥박이 빨라지며(빈맥), 두근거림,  떨림이 나타나거나 대변 횟수가 증가할  있다. 피로감, 불안감  초초함이 나타날  있고, 가슴이 아프다고 느끼거나 숨이 차다고 느낄  있다. 이하 생략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문제는 '대변 횟수가 증가할 수 있다.'였다. 씬지로이드를 복용하는 모두가 겪는 문제는 아니고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 같다. 생전 처음 만나는 고용량의 호르몬제에 장도 당황했나 보다. 몸의 어느 한 부분 귀하지 않은 곳이 없다더니.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항문의 중요성을 몸소 정말 몸소 느꼈다.


웃픈 해프닝은 한동안 엄마와 나의 엔돌핀이 되어주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괜찮냐며 묻는 엄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이제 괜찮다며 대답하는 나도 덩달아 배를 잡고 웃었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괄약근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잃지 않게 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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