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전 자취생활만 대학 4년, 직장 생활 7년 도합 11년이다. 이 정도면 왠만한 요리는 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내 수준에서 요리란 불을 사용하지 않는 썰기 수준이었다. 고작 해봤자 바나나 썰기, 사과 썰기, 두부 썰기. 그리고 조금 더 신중을 가한 날이면 가스 불을 켰다. 계란을 삶아 먹거나 계란 프라이를 해 먹었다. 그리고 작정을 한 날에는 엄마가 정성을 다해 끓여 준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진수성찬이라며 차려 먹었다. 그랬던 내가 일 년 동안 외식을 손에 꼽을 정도로 하지 않고 그것도 손수 엄청나게 건강식으로 삼시 세 끼를 차려먹고 있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에 늘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보니 사람은 변할 수 있다가 되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앞두고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
" 이 정도면 꽤 오래 진행이 되었는데 이상한 거 못 느꼈어요? 본인이 전혀 몰랐다는 게 신기하네 "
참 나도 무심하지. 겉에 껴입는 천 쪼가리에는 그렇게도 신경을 쓰면서 정말 중요한 내 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귀한 몸이 암덩어리에 정복당하는지도 모르고 끼니를 거르는 일은 내 취미였고 (살 뺀다는 목적으로 그놈의 끝나지 않는 죽일 놈의 다이어트) 일 하고 돌아오면 힘들다는 핑계로 외식을 즐겼으며, 남편의 달콤한 유혹에 못 이기는 척 배달음식을 가까이했었다.
긴 수술을 끝내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 이러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이 참 많이 후회스러웠고 힘들어도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그 날부터 내 인생에 외식은 없다라고 다짐했다. 당연히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최대한 그런 건 수를 만들지 않도록 애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리책도 봤다. 아직도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있는 열 찌개 부럽지 않은 매일 반찬과 휘리릭 밥하기 싫은 날. 이 두 권으로 나는 집 반찬의 대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하는 요리마다 맛이 없지 않았다. 아니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매 식사 때마다 여보는 참 요리를 잘한다며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아마도 지치지 않고 롱런을 할 수 있었나 보다.
퇴원 후 건강, 의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몸이 병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이 불균형한 식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고3 수험생처럼 식사 계획표를 짰다. 하루 3끼를 그것도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식단을 짜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남편이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텃밭 가꾸기여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트에서 파는 기성품 녀석들보다는 못생겨도 훨씬 때깔이 좋고, 단단하고 맛이 좋았다. 그렇게 클린 식단을 몇 개월 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나니 음식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수술 전에는 원인도 모른채 피부과만 주구장창 다녔던 두피염도 클린 식단을 통해 말끔히 나았고, 수술 후 면역력 저하로 몇 달 동안 지독히도 나를 괴롭혔던 좁쌀 피부도 느리지만 완벽하게 음식으로 치유했다. 몇 달 동안 피부과를 다니며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고 아토피와 여드름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은 다 사서 써봤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매년 겨울 행사로 치렀던 감기, 유행에 민감해 신종플루까지 늘 달고 다녔는데 그해 겨울은 콧물 한번 흘리지 않고 보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하자고 즐겨 먹었던 패스트푸드, 바깥 음식들이 오히려 더 위험하고 힘든 삶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때 조금만 더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였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노력들의 절반의 절반만 하고 살아도 될 텐데 하는 후회가 많이 든다. 그래서 20대의 내 모습과 닮은 후배들을 만나면 프로 오지라퍼가 되어 배달시켜 먹지 말고 밥 해 먹으라고 그렇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스스로 클린 식단 홍보 대사가 되어 개인 SNS에도 수 없이 강조를 하고 있다. 사실 건강을 잃고 나면 즐거움도 행복감도 느끼기가 힘들다. 그래서 건강할 때 더욱 건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에 너무 공감한다. 조금은 힘들고 번거롭지만 나를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