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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Aug 09. 2020

괜찮아요. 무너지지 않아요.

4년 만에 도돌이표, 이 죽일 놈의 cancer

 마의 3년


 아부지가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셨던 마의 3년이 지났다. 희미해져 가는 수술 흉터 자국만큼이나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도 잠깐씩 망각하곤 했다. 예전의 굴뚝같던 마음도 가끔은 연기처럼 가벼워져 지난날의 식습관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날이면 치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잔 두 잔 마시기도 했다.


 괜찮은 줄 알았다. 한두 번의 일탈이 잘 다져온 지난 4년을 무너뜨리기야 하겠냐는 생각을 했다. 수술 후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대검진 그러니깐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동시에 받는다. 검진이 다가오면 나만의 루틴을 실행한다. 검진 한 달 전부터는 살짝 걱정이 되면서 평소의 식습관을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식단에 온 힘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는 아무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결과를 바라는 기도였다.


 코로나 19가 온 세계를 대재앙 속으로 빠뜨렸던 올해 겨울, 4년째 접어든 정기 검진을 받으러 서울로 향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느껴지는 몸 상태는 별로였다. 예전에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별별 걱정을 다하며 검사를 진행했지만 늘 결과가 좋았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20초면 끝날 초음파 검사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매끄럽게 잘 닦여진 도로 위의 자동차처럼 쌩쌩 달려야 하는데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이건 필히 분명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생긴 거다. 불안의 씨앗은 어느덧 공포로 자라나 있었고 결국 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과를 듣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정말 살 떨리는 시간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우리는 다시 서울행을 했다. 결과만 좋으면 이거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새벽길을 힘차게 달렸다. 모니터를 보는 내과 교수님의 담담한 얼굴을 보니 뒤이어하실 말씀이 무엇일지 짐작이 되었다.


" 피검사에서 암 수치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하지만 초음파상 모양이 의심스럽고 크기도 제법 커서 세침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장거리이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길이 걱정스러우실 테니 결과는 전화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4년 전 했었던 긴 바늘의 공포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다는 3월이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세찬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따끔합니다."


긴 바늘이 내 목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느낌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코로나보다 세침검사가 더 무섭다. 검사가 무섭다기보다는 솔직하게 검사 뒤 감당해야 할 일들을 또다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가 참으로 두렵다. 피 말렸던 한 달 드디어 결과를 듣는 날이 왔다. 11시쯤 전화가 올 거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앉아 자꾸만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틀어봤는데 다 소용없었다. 글자는 둥둥 떠다니기만 하고 멜로디는 귀 근처에 닿지도 못했다.



If, 만약에

만약에 재발이라면, 만약에 암이 아니었다면.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결과에 따라 달라질 빼곡히 적힌 질문들.



 결국 나는 만약에 재발이라면에 적힌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수 많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에 끝을 맺지 못했다.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1년만 있으면 중증환자등록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그 힘든 과정을 내가 또 겪어야 하다니.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훈련을 했지만 또 막상 이런 일과 마주치니 쉽게 다잡아 지지 않았다. 두껍게 쌓아두었던 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고 눈물샘은 홍수가 났다. 사실 첫 번째 받았던 충격보다 두 번째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더 컸다. 주사도 맞아본 놈이 더 아픈 줄 안다고 진짜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좌절감이었다. 하지만 곧 굵고 짧게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재발의 원인이 지난날의 나의 행동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처럼 암의 재발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괜찮다. 평생 건강 관리하면서 살기로 애초에 마음먹었으니깐 이번에는 조금만 더 관리에 신경 쓰는 걸로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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