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끔찍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이라고 답할 것이다. 완치 판정을 1년 남겨두고 갑상선 유두암 재발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그날부터 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가기까지의 시간들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들이다.
끈질긴 암이 재발한 후 4년 전 처음 암이라는 녀석과 마주한 그때와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감정 표현의 방식이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처음으로 암일 확률이 99%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임파선 전이가 함께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 나는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 감정들을 그대로 다 쏟아냈다간 가족들이 내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어할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 순간에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고 하겠지만 그땐 그런 생각들이 강했다. 그래서 남편을 제외한 가족들에게 오히려 더 밝은 척, 괜찮은 척 애쓰지 않아도 될 애를 썼던 것 같다. 대학병원을 따라온 엄마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었고, 친구들이 걱정해주는 말에 되려 괜찮다며 잘 이겨낼 거란 거짓 씩씩함을 내비쳤었다.
이러한 감정 표현 방식에는 뒤탈이 있었다.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 속에서도 제대로 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터져버릴 듯한 감정 폭탄을 위태롭게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암세포가 정상세포를 잡아먹고 순식간에 커져 버리 듯 불안함과 두려움을 내뱉지 못하고 속에 담아두니 내 안에 있던 밝은 에너지까지 금세 소멸되고 말았다. 긴 시간 싸워 이겨야 하는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는데 내가 그것들을 하나둘씩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땐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앞으로 받을 두려움이 얼마나 클지 미리 알지 못했기에 여태껏 해왔던 문제 해결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려 했던 것 같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랬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도 학습을 통해 발전된다. 같은 일을 맞닥뜨렸을 때 다시 나를 휘감는 무서움 속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더 빠른 속도로 자라라는 두려움과 공포감, 좌절감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감추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감정을 내뱉어야 할 때는 힘껏 내뱉고 지친 나를 보듬어 주어야 할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스스로가 너무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힘들 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나약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건네주는 위로가 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힘이 되었다.
감추고 괜찮은 척하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인 척 행동하는 것. 그게 더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한들 지나가는 바람과 따뜻한 햇빛과 단단한 땅 없이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결해 나갈 수는 없다.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 그것 자체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오늘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애인에게 나 오늘 너무 힘들었으니, 잠시만 기댈게. 하고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따뜻한 온기가 담긴 위로는 그 어떤 약 보다 최고의 특효약이 되어 당신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