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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Nov 02. 2021

배테기의 신세계

헛똑똑이었네

남편과의 긴 대화 끝에 난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다.


나는 하나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치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듯 철저하게 알아보고 준비를 하는 편이다. 난임병원의 검사도 그랬다. 요즘은 블로그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너무도 다양하고 잘되어 있기에 그곳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가보지 않고도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충분한 각오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난임 병원의 첫 경험은 버거웠다.


가장 난감했던건 생리 중 진료였다. 일명 굴욕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유쾌한 일이 아닌데 거기다 생리 중 진료라니! 아, 상상 만으로도 끔찍하다.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뒷 정리를 해야 했던 나는 흡사 동물이 된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진료를 받는 일이라지만 절대 네버 결코 끝까지 적응되지 않을 것 같다.


초음파로 들여다 한참 들여다본 자궁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임신에 관련된 다양한 피 검사도 했고 아픔이 어마무시 하다는 나팔관 조영술도 예약하고 왔다.





걱정과는 달리 결과는 매우 좋았다. 피 검사로 알게된 난소 나이는 놀라울 만큼 젊게 나왔고 나팔관도 두 쪽 모두 뻥뻥 잘 뚫려있었다. 대한민국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근종 빼고는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아니 우월한 자궁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동네방네에 뜬금 없는 난소 자랑을 하고 다녔다.

"여보세요~ 제 난소 나이가 몇인줄 아세요? 어머 25살이래요!"


괜한 걱정을 한 건 아니였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병원에 와 볼 걸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나에게 문제가 없다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부터 임신을 향한 노력은 남편 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다.


일사천리로 진행 되는 과정을 보며 난임병원행이라는 결정을 하기 전까지 꽁꽁 숨겨두었던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는 듯 했다. 신의 영역이라는 임신이 곧 의느님이 해결해주실 것 만 같았다.


임신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다 여태껏 몰랐던 배테기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배란테스트기란 것인데 놀랍게도 배란일을 거의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주치의께서 검사 결과가 좋으니 자연임신을 먼저 권하셨다.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초음파로 난포의 크기를 관찰하며 배란일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받은 날과 배란테스기가 알려주는 날이 같았다. 참으로 배테기는 신세계였다.


사실 난임 병원을 다니기 전 몇달간 우리 부부는 자연임신을 위해 혼신에 힘을 쏟았다. 누구의 어떤 것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몸의 변화에 의지하며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란일이라고 느꼈던 나의 몸 변화는 실제로 배란 훨씬 전이었다. 우린 그렇게 감각에 의지한 채 사랑 보다는 의무감에 관계를 가졌다. 그러니 한 마디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정자는 하염 없이 난자를 기다리다 장렬히 전사했던 것이다. 


배테기를 알고 난 후부터 그리고 의느님이 배란일을 알려주신 뒤 부터는 모든게 잘 될 것 같았다.


'그래 이제 쓸쓸히 정자를 떠나 보내는 일 따위는 없을 거야! 올해 크리스마스는 셋이서 보내게 되겠군'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기 전까지 희망에 가득 차있었고 기대감은 하늘을 치솟았다. 믿고 의지했던 배테기는 앱과 연동되어있었는데 거기에는 임신을 성공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어있었다. 곧 나도 저곳에 배테기에 대한 무한 감사를 적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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