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명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발언에는 이준석 대표의 문명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준석 대표는 '최대 다수의 이익 보전'을 통한 사회 효율의 증대에서 문명의 증거를 찾는다. 소수자의 이익 실현을 위해 공동체의 효율이 저해되는 상황은 그에게 있어 비문명의 공포다. 예컨대, "지하철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서 뜻을 관철하려 하는 부분을 비문명적이라고 한 것이다(2022. 04. 12.)." "최대 다수의 불편 야기로 뜻을 관철하겠다는 방식은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2022. 03. 28.)."
나는 이에 맞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문명관을 소개하고 싶다. 미드는 효율이 아닌 '돌봄'의 관점으로 문명을 읽는다. 미드가 말하는 문명사회에서 다수자는 제 불편을 감수하면서 약자의 돌봄을 위해 헌신한다. 이준석의 공포는 미드에게 희망이 된다. 예컨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게 한 학생이 문명의 첫 증거가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예상과 달리 마거릿 미드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찾아낸 1 만 5 천 년 된 인간의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골'이라고 답했다. 부러진 대퇴골이 다시 붙기까지는 대략 6 주 이상이 걸리는데, 그 시대에 대퇴골이 부러진 사람은 위험을 피할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사냥할 수도 없는 채로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굶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고. 그러므로 발굴된 대퇴골은, 다른 어떤 인간이 뼈가 부러진 동료의 곁을 지켰고, 다 회복될 때까지 돌봐줬다는 증거다. 마거릿 미드는, 역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됐다고 대답한 것이다(한겨레, ''돌봄'에 관한 단상', 2021. 05. 23.)."
이준석과 마거릿 미드, 서로 다른 두 관점에서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를 쓴다고 상상해 보자. 누군가는 제 무리의 이익을 보전하려고 다른 무리를 물리친 짐승의 피 묻은 발톱을, 다른 누군가는 부러졌다 되붙은 대퇴골을 책의 표지로 삼을 것이다. 전자는 효율과 각자도생의 논리로, 후자는 돌봄과 협력상생의 논리로 문장을 적어내려 갈 것이다.
어느 책이 더 잘 팔릴 지는 모른다. 나라면 상호 부조의 코드에 천착하여 문명사에서 인간 희망을 찾아내는 책에 먼저 손이 갈 듯 싶다. 누군가가 원치 않게 끼친 '폐'를 넉넉히 받아줄 만큼 신뢰와 돌봄의 감각을 확보해가는 공동체의 이야기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