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비명

by 이도경

어렸을 때 나는 어버지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그 시절, 난 정확히는 몰랐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가

다른 친구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은근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려고 할때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했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과 서운함을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게만 쏟아부었다.

특히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열어 그 집의 엄마들이 직접 와서 초대카드를 나누어 줄때면,

서운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학교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면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깊은 숲 속에 있는 것처럼

평화롭지만,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나를 맞이해주는 친구는 TV뿐이었다.

화면을 둘러싼 유리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세상을 배웠다.

나는 집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한가운데 서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시원한 해변에 앉아 발가락으로 파도를 저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TV라는 세상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숨어들기 위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추억들을, 어른이 된 뒤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하나씩 꺼내보게 될 그것을, 나는 갖지 못한 것이다. 그저 TV 속의 인물들과 가깝게 지내며 살았다. 공허함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무의식 속에 빠져있었으니까.

그런 식의 생활이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내 몸 속에는 거짓된 색이 가득 차게 되었고, 동시에 쓸데없는 자기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세상이 바뀌고, 자동차는 칼을 든 적으로 변하며, 건물들은 폐허로 변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그 한가운데 홀로 서있다. 내가 검을 한 번 휘두르면, 적들은 피를 내뿜으며 잘 익은 포도처럼 터진다. 이러한 망상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 자전거와 부딪힐 뻔도 했다. 집 안에선 TV를 보고, 바깥에선 망상을 하면서 나의 거짓된 세계는 진짜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해져 갔다.


나의 거짓된 세계가 현실을 대체할 정도가 되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더욱 드물어졌다. 거짓된 세상에서 나는 스스로를 코스모스라 불렀고, 모든 우주의 근원이었으며, 불사의 존재였다. TV를 보며 나의 세계를 더욱 정밀하게 만들 부품을 모았다. 그러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드물어 졌고, 몸무게도 지나칠 정도로 늘어났다. 주위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고 조언이랍시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생기는 감정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아니라 위선적인 말에 대한 역겨움과 분노 뿐 이었다. 나와 함께해주지도 않으면서 그런 말을 늘어놓는 것이 미웠다.


흐려진 경계선을 넘어온 거짓된 세계의 영향 때문일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악을 쓰고 난리를 쳤다. 할머니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분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셨는데, 봄엔 미나리나 쑥을 캐러 밭에 나가셨고, 여름엔 전기세를 아끼려고 시원한 백화점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술을 드셨다. 할머니를 책임지는 것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알아서 하실거라고 하셨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의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의 일그러진 마음은 할머니가 들어오지 않는 것에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냈다. 밤 11시가 되면 불안함에 심장이 요동쳤다. 우리집은 4층이었는데 할머니를 기다리다 아래층에서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맥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철로 만든, 분홍색 페인트를 칠한 그 대문이 냈던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그것에 귀를 기울였던 어린아이도. 그렇게 새벽 1~2시가 넘어갈 때가 허다했다. 심장은 너무나 쿵쾅거려서 그대로 가면 과열로 멈춰버릴 것만 같았고, 배는 이상하게 더부룩했다. 그럴 때면 항상 늘 안좋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 생각났다. 나중엔 지쳐서 방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TV를 봤다.

그리고 조용하게 사물들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TV는 음소거 된 것처럼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새벽이라 그런지 아파트 전체가 조용했다. 분홍빛의 문이 내는 소리도 잠잠해졌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상상력 때문에 뒤돌아 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화장실 배관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 욕실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냉장고의 냉각기가 돌아가는 소리, 옆방에서 들리는, 이세계의 누군가가 내는 듯한 알 수 없는 소리, 뜬금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전화벨소리. 그 모든 것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럴 때 난 TV의 음량을 더욱 키우고 웃음소리가 많은 예능을 틀어놓았다. 물론 도움이 되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인내의 순간일 뿐 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나는 가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듣고 누군가 나에게 달려와주길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비명과도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

비명처럼,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두려운 마음을 쏟아냈다. 어린 마음속에 다 차지 않을 정도로 깊고 짙은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