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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고 사색하며...

by 김상

https://youtu.be/3aH0szeDv-Q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작은 일부터 시작해."

선생님이 말씀하신 조언대로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빠르게 일을 구할 수 있는 당근마켓을 켰고 내 눈에 들어온 한 글을 발견했다.


"시간당 급여 XXXXX원 셀프인테리어 보조역할"

나는 바로 신청을 했고 다음날 일하러 나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후암동 폐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남산 밑 후암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산 아래에는 아직 재개발이 안된 지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후암동이다. 나는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5분여쯤 지나 오른쪽에 여관골목이 보였다. 지도앱에서 안내한 대로 발걸음을 향하니 저 멀리 널찍한 텃밭이 있는 오래된 폐가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30 후반의 젊은 사장님께서 맞아주신다. 폐가를 개조해서 바베큐장으로 만든다고 하신다.

2주 동안 혼자서 셀프인테리어를 해왔는데 도저히 혼자는 안될 것 같아 사람을 불렀다고 말씀하셨다.


이번주 작업할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텃밭의 흙을 퍼내어 지형의 높낮이를 맞출 것

2) 옥상에 있는 철기둥 커팅기로 제거하기

3) 콘센트와 전기선 철거 등

4) 기타 철거 및 청소 등

남산타워가 보이는 후암동 폐가의 옥상

나는 우선 옥상에 있는 남은 폐철기둥을 커팅기로 자르는 작업보조에 투입되었는데, 옥상에서는 저 멀리 남산타워와 남산타워 아래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게 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커팅과 청소를 마치고 나는 땅을 파러 1층으로 내려갔다.

흙이 들어있는 마대자루

20살 군생활 이후로 잡아보지 않았던 삽을 다시 한번 잡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왼손은 삽의 아랫부분, 오른손은 위쪽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 팔로 힘차게 삽을 땅으로 파 넣는다. 겉 부분의 말라있던 흙을 퍼내니 안에는 짙은 갈색의 촉촉한 흙이 보인다. 흙에서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자연의 냄새가 난다. 향기로웠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20분을 내리 삽질하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티셔츠는 땀으로 범벅된 몸에 붙어버렸고 몸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하지만 개운한 느낌이 몰려들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진다. 불안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치료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흙을 퍼내며 이름 모를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무성하게 자라있는 잡초를 삽의 옆면으로 내리치며 숨통을 끊었다.

아무리 잡초라 할지라도 고유의 이름이 있을 것이며 하나의 생명일탠데,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에 생명을 죽였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도 언젠가 죽어 흙이 되어 돌아가겠지? 시간이 흘러 밤이 되니 감각과 감성이 살아나며 청승맞은 생각이 튀어나온다.


날이 어두워지며 남산의 성곽에 조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낮과는 달리 주위는 고요해졌고 낮에는 느끼지 못한 작은 소리도 들린다.


사장님께서 부르셨다. "도석 씨! 퇴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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