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내일 부터 바로 가능합니다!"
"좋네요. 내일 작업복 챙겨와주세요. 내일부터 일해봅시다"
아침 7시경 핸드폰의 알람을 해제하고 졸린 눈으로 일터에 나갈 준비를 한다. 명동의 한 호스텔에 하우스키퍼로서 오전에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604번 버스를 타고 명동에 가는 중에 머릿속에서는 인수인계를 해준 전임자의 말이 아른거린다.
'여기에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에 서는게 중요해요, 여사님들과 부장님들 그리고 프론트매니저, 그리고 세 분의 대표님들 사이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중립을 유지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10명 내외의 작은 집단안에서도 작은 갈등의 씨앗들이 도처에 흩뿌려져 있었다. 불을 한번 붙혀주면 활활 타오르는 도화선들이 말이다. 프론트 매니저와 클리닝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클리닝 스태프들 내에서도 부장님들과 여사님들의 긴장감이 존재했다.
겉으로는 하하웃고 떠들고 화목해보이지만 뒤에서는 서로에 대한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간다.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청소일을 찾았던 나에게, 세상은 작은 시련을 안겨준다.
하우스키핑 일은 크게 두가지 파트로 나뉘어졌는데, 베딩과 청소기,걸레질,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파트와 화장실 청소와 객실정리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화장실 파트는 두분의 여사님들과 외국인 한분이 진행하며 나머지는 부장님들과 내가 담당했다. 전임자는 눈치껏 내 파트일이 끝나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는데, 나는 여기서 모순이 있다고 판단했다. 부장님 두분에게는 요구하지 않으면서 막내에게 의무적으로 해야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나는 눈치껏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는 서로간에 분쟁이 생기지 않게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껏이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분쟁이 발생하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할수는 없는 것일까? 여러 의문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곳에서 가장 밑바닥 위치인 내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청소라는 일자체는 내 삶에 활력과 설명할수 없는 어떤 에너지를 내 신체와 정신에 불어넣어준다. 아침일찍 규칙적으로 일어나며 노동하면서 오히려 몸은 더 건강해지고 있다. 더러운 방을 치우고 깨끗해져가는 방을 완성했을때 느껴지는 기분좋은 느낌, 그리고 일을 끝마치고 약간의 노곤함을 느끼며 길을 걸을때의 그 프레쉬한 느낌은 내가 이 직업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몇주가 지나고 슬슬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에 복도에서는 언성들이 오간다. 객실내 블라인드를 어느 위치까지 열어놔야 할지에 대한 이슈가 발생했다. 전임자에게 배운대로 모든 객실 청소후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리고 마무리 했었다. 그게 사건의 발단이였나보다. 블라인드 위치에 대한 애기를 하길래 내가 끝까지 내리고 마무리 했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매니저에게 청소팀과 내용을 통일을 하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른 대표님이 찾아와 호텔은 끝까지 내리는게 맞다고 애기한다. 서로 간에 의견이 오가고 반만 올리는걸로 합의한다. 매니저의 지시를 전달받고 있는 중에 갑자기 여사님 한분이 매니저에게 보란듯이 나에게 애기한다.
"그건 너가 건드리는게 아닌데 왜 건드리냐?"
두 명이 동시에 나의 얼굴을 보며 각자 애기를 하는데, 그들은 업무의 피드백을 하는게 아니라 각자 말을 내뱉으며 욕구를 해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애기를 하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할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블라인드 하나로 갈등의 씨앗들에 쉽게 불이 붙어버린다. 속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오지만 이것이 내가 극복해야할 벽이라는게 운명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청소일을 하며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포용하고 한 팀으로서 같이 나아갈수 있을까?
시스템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을까?
내 의지로 밑바닥의 위치에서 이 집단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게 가능할까? 아니 이건 오만한 생각인 것일까?
나에게는 내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주어졌고 부딪히고 깨지고 저항하며 나를 만들어 가고싶다는 강한 의지가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