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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Nov 06. 2020

불순한 의도의 장기 기증

모르는 게 행복이다.

  

독서 모임 ‘담쟁이’에 멤버인 U선배님의 남편은 아벨리노 각막 이영양증(Avellino Corneal dystrophya)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유전질환으로 각막에 흰 반점이 끼면서 시력을 잃게 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라식 수술을 하여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고 결국 실명에 이른다고 했다. 세 자녀 중 첫째가 10살도 되지 않았고 셋째는 모유를 막 끊었는데 가장이 급격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목이 매인다. 그런 사람에게 각막이식은 한 가정을 부축해 줄 수 있는 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순한 의도로 남편의 각막을 기증했다.


‘제발 남편을 남아있게 해 주세요.’ 장례식에 하루 종일 울어서 부은 눈과 쉰 목소리로 의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몸 일부를 이 세상에 최대한 많이 남겨 달라는 부탁이었다. 생전에 기증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 남편을 조금이라도 남겨놓고 싶은 간절함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사후 기증이 가능한 것은 ‘각막’밖에 없다고 하셨다. “우리 자기의 눈만이라도 세상에 남아있게 하자”는 설득에 아버님도 승낙하셨다. 남편의 눈이라도 남겨서 어쩌면 다시 그 눈을 볼 수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담긴 불순한 의도였다.   


장례식 첫날 저녁 불심 깊은 서울 큰 시누이가 각막 이식 소식을 듣고는 환생했을 때 눈이 없으면 어쩌냐며 노발대발하여 기증한 병원에 연락까지 하게 되었다. 이미 각막은 대구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애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눈이라도 남겨두고 싶었겠느냐, 나중에 눈이라도 볼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의미롭다.”라고 하시며 아버님께서 교통정리를 해주셨다. 장례식 도중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가 다시 의식을 차리면 나는 남편의 눈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머릿속에서 꺼내곤 했다.      

 

몇 개월이 지났다. 나는 드디어 남편의 눈을 이식한 사람을 찾는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불법임을 알기에 그 행보를 아버님께 조용히 알려드렸다. 나중에 그 사람 주소를 알게 되면 같이 보러 가자며 희망을 공유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영화 상영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영화는 대구 부근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시작할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시아버님과 나는 서로 너무 놀라지 않도록 손을 꼭 잡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마침내 이식해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슬쩍이라도 그 눈을 응시할 수 만 있다면, 그런 후 마음을 접고 고개를 돌려 그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올 수 있을까? 집으로 오는 운전대를 잡은 손은 떨려서 제대로 운전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눈을 본 순간 울며불며 매달려서 그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 영화는 이 즈음에서 항상 멈췄다. 영화가 이런 막장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장례식 했던 병원에 가서 각막 이식한 곳이 ‘D’ 병원임을 알아내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D’ 병원 기증 관련 부서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데 심장이 두배로 방망이질해대는 통에 뇌까지 심장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각막 이식한 불순한 의도가 틀통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남편의 눈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심장도 두배로 뛰는 것 같았다. 막장 드라마를 너무 리얼하게 감독한 것이 후회가 됐다. 하지만 남편의 눈과 재회하는 그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돌려보고 싶은 장면이라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해져서 그 간절함이 결국 이 병원의 계단까지 오게 했다.


남편의 눈을 마지막으로 본 의사를 본다고 생각하니 그 의사 눈을 보는 것이 남편의 눈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벌써부터 눈이 충혈되는 것 같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만큼 연기는 쉽지 않았다. 어쩐 일로 왔냐고 묻는 의사를 보는 순간 이미 내 눈가가 촉촉해져 왔기 때문이다. “저~ ”라고 말을 시작했으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고 의사는 왜 왔냐고 다시 물었다. 침을 삼키고 말을 시작했다. '남편이 언제, 어느 병원에서 각막이식을 했는데 남편의 각막을 누구에게 이식했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 멀리서 그 사람 눈만이라도 보고 올 수 있게 해 달라. 절대로 눈에 띄지 않겠다. 약속을 하겠다.'라고 차분하게 그리고 간곡히 부탁했다. 사고 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상을 최대한 주기 위해 차근차근하게 설명하려 했으나 눈에서 흐르는 눈물까지 막지는 못했고, 급기야 울면서 불순한 의도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기증하면 남편의 눈이라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증했습니다. 사고 치지 않을게요. 정말 조용히 딱 한 번만 보고만 올게요. 제발 좀 알려주세요.” 이미 막장드라마가 시작되고 말았으나 감독은 이 장면에서 컷을 외치지 않아서 계속되는 참사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꺼이꺼이 한참을 울다가 겨우 진정하고 의사의 표정을 살폈는데 표정이 석연치 않았다. 순간 실패를 직감했다.      


의사는 찬찬히 나를 바라보더니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전형적인 의사들의 건조한 문장으로 “각막은요 동구란 안구가 아닙니다. 각막은요 눈 표면에 있는 얇은 막이예요. 그거 보러 가시게요?” 눈동자가 전부가 있는 안구를 기증한 게 아니란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순간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영화는 바로 ‘컷’이 되었다. 울고 불고 찍은 막장 드라마는 나의 무지로 각본까지 써졌지만 실제 상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린 듯 보이자 의사는 더 냉정해지고 사투리가 더 섞인 말투로 “그런 정보는 알려주지 않습니데이!”하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무지가 부끄럽기도 하고 기대가 사라지면서 좀 전까지 뜨거웠던 심장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를 열 때 나오는 드라이아이스의 서늘한 바람이 구멍 뚫린 그 심장으로 훅 지나가는 것 같다.  계단을 올라올 때의 떨림과는 전혀 다른 후들거림으로 계단을 겨우 내려왔다. 서늘한 내 심장에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떠오른다. 이 실패를 함께 나눌 사람 아버님! 내가 가져올 희망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실 텐데 나의 상심보다 이제는 그분의 상심이 더 걱정이 되었다. 교통정리를 해주실 때 어쩌면 아버님도 아들의 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셨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안구 전체가 아닌 얇고 투명한 각막만 이식된 거라고, 제가 잘못 알았다고, 아들의 눈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고개도 못 들고 울면서 말씀드렸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끊었던 담배를 시작하시면서 내가 담배 끊고 더 오래 살아 뭐하겠냐 하시던 그 아버님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어 준 것이 너무 죄송했다. 고개도 못 들고 울고 있는 나를 아버님은 오히려 위로해주신다. 당신도 나처럼 울고 싶으실 텐데...


막장 드라마 감독을 할 때 나는 행복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던 그 영화는 머릿속에서 아무리 다시 상영하려 해도 더 이상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검색창에 글자를 잘못 쳤을 때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처럼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다시 장례식으로 돌아가 안구가 아닌 투명 각막만 기증하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기증했을까? 불순한 의도로 각막을 기증한 나름의 고해성사로 U선배님께 전화했다.  U선배님은 "불순한 의도라도 그 각막 기증받은 분은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부럽네요. 남편도 건강한 각막을 기증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신다. 나처럼 무지에서 온 불순한 의도라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각막을 기증하여 그중 하나가 U선배님 남편에게 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아홉 살 첫딸 결혼식도, 여섯 살 둘째의 대학 졸업식도, 걸음마를 막 배운 셋째의 신병훈련소 퇴소식도 아빠가 선명하게 보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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