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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Aug 18. 2022

장애 비장애 통합 2

나의 기억 그리고 딸의 경험


30년전 유치원 초임교사로 장애 비장애 통합환경에서 처음으로 만난아동은 우영우같은 자폐아였다. 


그 김명석(가명)은 지금 2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몇천 더하기 몇천에 대답을 척척하고 여섯살에 모든 글자를 줄줄 읽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가 아닌 '화장실 다녀와, 화장실 다녀와' 라며 성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반향어도 우영우와 비슷했다.  


학기초 어느날 그림 그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 색칠을 돕다가 어느순간 교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자마다 섬뜩한 마음이 들어 김명석을 찾았는데 아이 자리가 비어있었다. 황급히 원장님께 보고하고 어머님께도 전화드리고 밖으로 찾으러 달려나갔다.  핸도폰도 없던 시절에 서로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미친듯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헤맸다. 아이는 근처에 없었다. 경찰로 연락하려고 돌아와보니 아이는 집으로 갔다고 어머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에게 유치원은 편한 공간이 아니었나보다. 기억을 더듬어 집으로 걸어갔으니 말이다. 


20대 초반의 어린 교사인 나는 명석이 엄마와 울면서 1년을 동고동락했다. 나는 지금도 이 아이가 그립고 또 찾고 싶다. 나에게 장애비장애 통합의 경험과 당위성을 알려준 우리 김명석을 말이다.  


둘째 딸은 유아교육과 졸업을 한학기 남겨두었다. 방학만 되면 장애아동의 방학 돌봄인 '달팽이 학교'에서 장애아이들과 한달을 보낸다. 퇴근하고 녹초가 된 딸은 달팽이 학교 친구들 이야기만 나오면 급 에너지가 올라오는지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하고 행복해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로 행복해 하는 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가 장애아를 돌보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그것은 장애통합어린이집에서 자란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김명석이가 했던 독특한 억양의 문장이 내 귀에 맴돌 정도로 잊혀지지 않는 아이다.  명석아~   너 때문에 나 지금 장애통합 어린이집 원장한단다. 너를 통해 우리 모두는 이 장애 통합의 세상을 열 수 있었어. 나도, 우리 교사들도 내 자녀들도 그리고 희수자연학교 모든 아이들과 부모님도 말이야. 첫 발을 용기있게 통합에 들어와준 너! 어디에 있든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나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단다. 


연락이 되다면 정말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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