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뺏아서 미안합니다.

by Cherry


최근 한겨레신문에 ‘아무도 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설에서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홍은전 칼럼*을 읽었다. 나는 어린이집 원장이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도 어쩌면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시설’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학교도 한 가지 아니겠냐, 과잉 해석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내가 그렇게 해석한 이유는 이렇다. 홍은전 씨 칼럼 속에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권혜경 씨가 격은 14일간 코호트 격리 경험담이 나온다. ‘코호트 격리를 겪으며’라는 글에는 원치 않은 격리를 겪으면서 되새겨본 거주인의 첫 입소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창 살 사이로 울부짖던 그의 몸부림은 몇 날 며칠 계속되다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체념이 아니었을까.’ 이 대목을 읽는데 익숙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제 갓 두 돌을 넘긴 어린 아기들이 친구와 재밌게 놀으라는 이유로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 나오는 장면이다.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내가 무엇을 겪을지 감을 잡을 수 없이 보내진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평가제 지표는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하는 일들로 근처 공원에 가거나 도서관이나 은행 가기(지역사회 연계)등의 일상을 하는지 확인하는 지표가 있다. 이는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가정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은 환경이다. 부모의 관심 있는 시선, 필요할 때 즉각 달려와줄 수 있는 상황 등 말이다. 그 안락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빼낼 것을 권하는 이나 권하는 제도는 누가 만들었까? 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책도 무상교육이고 대학에 학과도 있으니 마치 유아교육기관에 안보내면 교육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손해 보는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또 어땠는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설파하며 부모님들의 양육에 훈수를 두었으니 말이다. 시설이 어떻게 가정처럼 편안한 공간이라고 자랑했단 말인가!

20년을 몸 담은 이 직업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해 준 것은 코로나였다. 내가 아이들에게서 부모님을 뺏아온 것은 아닐까? 내 일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아이들은 부모님을 더 뺏기는 것이 되어버렸다.


마당 없는 도심 한복판과 차로 인해 더 위험해진 골목길로 아이들은 이제 저들끼리 맘껏 뛰어놀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놀이는 안전을 가장한 비용이 점점 추가되고 있다. 평일에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고 주말에는 캠핑과 키즈카페, 놀이동산이 부모님들의 주머니를 턴다.

게다가 명절과 생일마다 받는 고가의 장난감들은 방 하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표현을 빌자면 ‘움직임은 놀랍고 소리도 요란하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이거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행세를 한다.

반대로 모모에는 또 다른 장난감에 대한 설명도 나오는 데 상자 몇 개, 찢어진 식탁보, 두더지가 쑤셔 놓은 흙더미, 조약돌 한 줌 등이다. 그것들로 아이들은 모든 것을 상상하며 논다. 주인 행세하는 고가의 장난감보다 더 애착을 느끼면서 놀이에 흠뻑 빠져들어서 점심시간이라고 알리는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말이다.


정부는 알고 그랬을까? 2019 개정 누리과정의 핵심을 ‘놀이’로 전면 개편한 것 말이다. 물론 교재사들은 이 교육과정에 맞추어 교구 교재들에 이름을 바꿔 출시할 것이다. 놀이 과학, 놀이 수학, 놀이 미술, 놀이 코딩, 놀이 음악 등으로 말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라는 말은 넘쳐나는데 홍수에 마실 물 없듯 놀이는 더 갈급해졌다.

나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정에서 이 아이들을 양육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가정 보육을 하면서 부모님들은 그 일을 너무나 잘 해내고 있었다. 전문가라고 자처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들에게 양육의 주권을 뺏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그들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련다. 사회는 저출산을 걱정만 하지 말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는 '노동정책'과 주양육자들이 도움받고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풍성하게 하는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20년 달려온 일에 물음표를 던져준 귀한 글에 감사드린다.



* 홍은전 칼럼 https://v.daum.net/v/20210103155601147

* 모모 : 1973년 출판된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소설 부제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못 배송된 성탄 선물로 시작된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