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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Jan 06. 2021

자리를 뺏아서 미안합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아무도 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설에서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홍은전 칼럼을 읽었다.  나는 어린이집 원장이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도 어쩌면 아이들이 처음 맞이하는 시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학교도 한 가지 아니겠냐 과잉 해석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해석한 이유는 이렇다. 홍은전 씨 칼럼 속에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권혜경 씨가 격은 14일간 코호트 격리 경험담이 나온다. ‘코호트 격리를 겪으며’라는 글에는 원치 않은 격리를 겪으면서 되새겨본 거주인의 첫 입소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창 살 사이로 울부짖던 그의 몸부림은 몇 날 며칠 계속되다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체념이 아니었을까.’ 이 대목을 읽는데 이제 갓 두 돌을 넘긴 어린 아기들이 친구와 놀기 위해 어린이집에 보내지면 나오는 첫 반응과 겹쳐진다.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내가 무엇을 겪을지 감을 잡을 수 없이 보내진 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평가제 지표는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로 지역사회 도서관이나 근처 학교, 관공서 등에도 가고 동네 공원에도 가는지 확인하는 지표가 있는 것을 보면 어린이집은 가정같이 편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정이 더 낫다는 말인데 그 안락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빼낼 것을 권하는 이 제도를 누가 만들었으며 대학에서 학과도 만들고 무상교육정책으로 마치 유아교육기관에 안보내면 안되게 했는가! 그리고 나는 부모님들의 역할이 부족하다 치부하면서 내가 더 가정처럼 편안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감히 자랑했는가!


20년을 몸 담은 지금에야 이 직업의 존재 자체를 돌아보게 해 준 것은 코로나였다. 내가 아이들에게서 부모님을 뺏아온 것은 아닐까?  내 일을 더 잘할수록 아이들은 부모님을 더 뺏기는 것이 되어버렸다. 


마당 없는 도심 한복판이나 동네 골목은 차 때문에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도 없으니 놀이는 안전을 가장한 비용이 점점 추가된다. 평일에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고 주말에는 캠핑과 키즈카페, 놀이동산이 부모님들의 주머니를 턴다.


게다가 명절과 생일마다 받는 고가의 장난감들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표현을 빌자면 ‘움직임은 놀랍고 소리도 요란하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이거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방하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다.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인 듯 말이다.      


반대로 모모에는 또 다른 장난감에 대한 설명도 나오는 데 상자 몇 개, 찢어진 식탁보, 두더지가 쑤셔 놓은 흙더미, 조약돌 한 줌 등이다. 그것들로 아이들은 모든 것을 상상하며 논다. 주인 행세하는 고가의 장난감보다 더 애착을 느끼면서 놀이에 흠뻑 빠져들어서 점심시간이라고 알리는 것조차 미안해 질정도이다.      


교수들과 정부는 알고 그랬을까 2019 개정 누리과정의 핵심을 ‘놀이’로 전면 개편한 것 말이다. 물론 교재사들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구 교재들에 이름을 바꿔 출시할 것이다. 놀이 과학, 놀이 수학, 놀이 미술, 놀이 코딩, 놀이 음악...  놀이라는 말은 넘쳐나는데 홍수에 마실 물 없듯  놀이는 더 갈급해졌다.         


시흥시 놀이 문화 운영위원 최재훈의 페이스북에 복지 선진국 중 가정 중심의 복지 정책을 펼친 독일의 사망자 수가 시설 중심 복지 정책을 한 스웨덴보다 현저하게 적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가정 보육할 수 있는 역량도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정 보육을 하면서 부모님들은 사실 그 일을 잘 해내는 것을 나도 확인했으니 말이다. 


2021년부터 나는 부모님들께 미안함을 전하며 그들에게 양육의 주권을 뺏지 않으면서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련다. 사회는 저출산을 걱정만 하지 말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는 '노동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20년 달려온 일에 물음표를 던져준 귀한 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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