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은 산타가 있다고 믿을까?
아홉 살 우리 집 막내는 산타의 존재에 대해 80% 정도는 가짜일 거라고 생각하고 20%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스물셋, 스물하나 형과 누나가 어릴 적 산타에게 받은 선물 이야기를 너무나 리얼하게 해 준 덕분에 아직도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산타는 결국 엄마 아빠다. 선물을 몰래 숨겨 놓는 거다'라는 말을 듣기 때문에 그 신뢰는 점점 깎이는 듯하다.
올해 Advent Calendar*는 첫째가 사온 레고 아이템이다. 나는 내심 25일 성탄절에는 예수님 레고가 나올까? 1% 정도 기대해 보았다. 오늘은 24일 마지막 문을 열자...... 주인공이 나왔다.
역시 성탄절의 주인 자리는 산타할아버지가 차지했다. 막내는 형과 함께 산타를 조립하다가 우연히 트리 아래에 있는 선물을 발견했다.
선물 박스를 자세히 살펴보니 막내의 영어 이름 'SOL'이 쓰여있었다. (SOL은 막내가 영어로 읽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단어 중 하나.)
막내는 진심으로 감동한다.
첫째 감동은 우리 집에 정말 산타가 오셨다는 것!
두 번째 감동은 그 선물이 평소에 갖고 싶었던 밸런스 보드라는 것!
세 번째 감동은 그 산타 할아버지가 막내를 위한 영상편지*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자녀의 이름과 나이 최근 사진과 국적을 넣으면 산타가 보내는 메시지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열리지 않음
"안녕, 솔~ 엘프들이 순록에게 마법의 건초를 먹이고 있어. 곧 전 세계를 여행할 거야. 한국도 방문할지도 몰라! 봐, 여기 얼음궁전 갤러리에 있는 네 사진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야! 여덟 살이지? 지금 학교 다니니?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 좋은 목록에 있었으면 좋겠어. 솔~ 메리 크리스마스!"
솔이가 들은 단어는
" Hello Sol " "Korea" "8 years old" (솔이는 이 문장을 여덟 살이 아니고 선물리스트 8번이라고 생각함. 한국나이로는 아홉 살이니) "go to school~ "
미국에서 공부했던 첫째가 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통역해 주었다. (엄마의 통역은 덜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 선물에 영상편지까지 받았으니 신뢰도는 20에서 100으로 올라갔다. 막내는 온 세상에 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동네 동생, 사촌동생 등 등
나는 선물에 마냥 기뻐하는 막내에게 성탄절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 : 성탄절은 우릴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날인데 Advent Calendar 에도 주인공이 산타이고, 산타가 선물도 줬다고 해서 성탄절 주인공이 산타로 바뀐 것 같네
막내 : 아니야 그걸 축하는 거지 (대답은 건성이다. 엄마의 훈시로 이 기쁨을 날리고 싶지 않은가 보다.)
엄마 : 엄마가 보니 이 선물은 '산타 협회'에서 보낸 것은 맞아. 그런데 산타협회는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너무 가난해서 성탄절이 너무 힘들고 외로운 어린아이들을 찾아서 성탄절을 기쁘게 보내도록 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는 거야. 안 그러면 '그린치'처럼 심장이 너무 작아져서 화가 나거나 너무 슬프게 될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산타협회에 잘못 보낸 것 같네.
막내 : 아니야 엄마! 여기 선물에 이름도 내 이름이고 편지도 받았고, 선물도 딱 내가 받고 싶은 거니까 나한테 온 게 맞아.
엄마 : 그래 솔이한테 온 게 맞는데 솔이가 선물을 받았으니 아마 솔이보다 더 힘든 누군가는 선물을 못 받았겠겠는데? 솔이가 선물을 받아서 이렇게 기쁜 만큼 솔이도 다른 아이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어.
막내 : "누구?"
나는 평소에 후원하던 '한국 컴패션' 사이트를 열었다. 400일이 넘도록 후원을 기다리는 아이들 리스트를 쭉 ~ 보여주면서 솔이는 누구에게 빵과 학용품을 보내주고 싶은지 물었다. 솔이가 선택한 아이는 이본이다.
이제 2020년 성탄절을 기점으로 막내도 후원에 동참하게 되었다. 막내의 후원금은 5,000원부터 시작이다. 나머지는 내가 보태기로 하고.
선물을 가져갈까 봐 걱정한 막내는 선물 있던 자리에 고이 이 편지를 써놓고 무거운 밸런스보드를 굳이 방안에 넣고 잠이 들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이 편지를 못 보고 선물을 반품해 가실까 봐 걱정이 살짝 되는 모양이다.
내일 아침에는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이 형아에게 도착할 예정이다. 형아가 대신해서 읽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아마도 막내에게 마지막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보낸 선물이 될 것이다. 2020년 성탄절에 아홉 살 막내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