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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Dec 12. 2022

거스르지 말자

순리대로 하자

스키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별한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스키는 이제 골동품이 되었다.

그래도 이 골동품으로 스키강사 자격증도 땄고,

덕분에 최상급 코스를 안전하게 누빌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휘닉스 파크


나는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겨울을 좋아한다.


스키는 2001년 미국에서 처음 타기 시작했다. 로키 산맥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리조트와 슬롭 길이에 감탄했다. 한번 올라가서 스키를 타고도 10분을 내려오는 코스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초보였으니 그 슬롭은 말로만 듣고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날이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눈송이는 내 손에서 쉽게 녹지 않았다.


눈송이마다 눈의 결정체가 뭉쳐있는데 각각의 결정체가 너무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눈의 결정체를 감탄하는 동안에도 나의 감동을 지속해주려는 듯 쉽게 녹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고 다양한 그 록키 산맥의 눈 결정체를 다시 보고 싶다. 그때의 경이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남부지방에 사는 내가 한국의 눈을 볼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추억 때문에 나는 스키장에 갈 때 눈이 오는지를 꼭 확인한다. 강원도라 하더라도 스키장에서는 인공설이 대부분인 것이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미국 스키장을 추억하며 최대한 가까운 스키장으로 달려갔다.  미국 스키장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몇 시간을 달렸다.


슬롭은 양쪽에 안전 휀스를 쳐두고  너무 잘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안전휀스를 꼼꼼하게 치지 않았던 것 같다.(20년 전의 기억이고, 리조트마다 다를 수 있음)


미국은 슬롭에 나무들도 간간이 있었다. 다치면 나무를 왜 제거하지 않았느냐는 민원 거리가 될 것 같아서 없앨 법 한데도 산에는 나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니 나무를 피해서 타라는 암묵적 동의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꼭대기 미국 리조트 매점에도 국뽕 가득하게  한국 컵라면이 인기였다.  맛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라면은 세계적인 비상식량으로 언제나 사랑받는 음식인 것 같다.


오늘 22/23 시즌 첫 스키를 타면서  새삼스레  미국 스키장의 추억을 꺼내보니 다시 20대가 된 듯하다.


스키는 산의 경사를 이용한 스피드를 즐기는 스포츠다. 스피드 때문에 안전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강습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자녀들과 함께 스키장에 가면 항상 강습을 받은 후 스키를 타도록 한다. 스키지도자 자격증 있는 나 역시도 시즌을 시작하는 첫날은 강사와 함께 타면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감을 익히고 자세를 교정받은 후에 한 시즌을 즐긴다.  


막내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갔다. 막내가 슬롭에 익숙해지도록 초급 코스에서 같이 타다가 익숙해지고 나면 나는 상급으로 슬롭을 바꾼다.


카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서로 각자 수준에 맞는 슬롭을 탄다. 막내는 엄마랑 같이 타겠다고 절대로 하지 않는다.


가파른 스키장 슬로프를 내려갈 때는 S자로 타는 것이 정석이다. 직선으로 내려오는 직활강은 사고 위험이 커 대부분의 스키장이 금지한다. 초보 슬롭에서 타다 보면 스피드를 즐기면서 직활강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스스로는 아주 잘 탄다고 생각될 텐데,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간혹 초보를 막 벗은 스키어가 상급 코스를 시도하면서 내려가는 것을 보면 아찔하다.


속도가 통제되지 않아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 넘어지면서 스키 플레이트가 꼬여 다리나 허리 또는 머리를 다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앞사람을 추돌하여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초보 스키어는 헬맷을 쓰지 않고 타는 경우가 있어서 더 위험하다.  상급은 경사가 심해서 플레이트가 부츠에서 빠지면 플레이트가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해서 다시 장착하느라 엉덩이로 한참을 슬롭을 타고 내려와서 플레이트를 장착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적기교육과 조기교육이 생각난다.


유아교육 현장에서도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슬롭을 지켜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과도한 학습을 시키는 부모님의 뜻을 거절하지 못하고 부모님 뜻에 맞추다가 마음에 병이 생겨 탈모가 생긴 아이,

종이로 된 어떤 것도 거부하는 아이,

이미 시키는 것에 익숙해져서 시키는 것은 잘하지만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놀이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교육과정은 ‘놀이’가 핵심이다. 자유놀이 속에 주도성 창의성 언어 수 과학 등 모든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희수자연학교를 교육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던데 이것은 누리 교육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희수자연학교는 누리 교육 과정이 충실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배운다. 넬슨 만델라가 ‘실패란 ‘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수없이 실패해보고 다시 도전하고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교육과정에 자꾸만 '놀이 수학', '놀이 과학', '놀이 독서'라는 타이틀로 아이들에게 유아 때부터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아이가 수학을 조금 잘한다고 계속 더 높은 수준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상급 코스에 핼맷도 없이 내려갈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은 위험한 행동으로 보인다.


독일은 초 1학년이 알파벳을 미리 떼고 온 아이들의 부모에게 경고한다.  미리 배우고 와서 수업에 방해되기도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다며 교육과정을 지키라고 말이다. 


수학에 뛰어난 아이라면 지금 그렇게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저절로 수학을 관심을 가지고 잘할 수밖에 없다.


ADHD 질환을 가진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 지나영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 중에 지교수도 이렇게 언급한다.





무기력의 비밀의 저자 소아정신과 김현수 선생님은 수많은 청소년들을 진료하면서 한국 가정에서 자녀와 부모의 대화시간이 부족하다는 통계에 격하게 공감하셨다.


부모님과 아이들의 대화가 기승전 공부가 되다 보니 부모님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 ‘시키는 공부’만 하게 된다. 이제는 연애조차도 학원에서 배운다고 한다. 실패 즉  차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경쟁교육으로 친구조차 없는 요즘에는 친구 사업도 생겨났다. 정답에 익숙한 아이들은 무조건 맞다고 말해주고, 칭찬만 해주는 친구가 필요한가 보다.


학습지 풀이에 익숙한 아이들은 모든 것에 정답만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가득 차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서울대생들이 열등감이 높다고 하는 기사는 오래전부터 회자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열등감 속에 사는 반면 최근 포럼에서 김누리 교수는 독일 사람들은 열등감이 전혀 없다. 고 했다.



https://m.youtube.com/watch?v=JfqebH7wVd8




https://m.youtube.com/watch?v=qivEvlNW2-A

변호사 100명이 경쟁교육으로 인해 죽어가는 한국 교육의 현실에 위헌이라고 헌법소원 청구를 했다.  위 영상은 이를 지지하는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발언이다.




헌법소원에 최근 헌법재판소가 이 소에 대해 심판 회부를 결정했다. 

 (심판 회부가 결정된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심판 회부조차 안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만 5년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부모와 교사가 학습을 시키면서


“맞았네 잘했구나, 또는 틀렸네 이것은 왜 틀렸을까 생각해보자. 다시 한번 풀어볼까? , 이번에는 틀렸지만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내 “


이런 대화(?)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이것을 의미로운 대화라고 생각할까?


가르치고 문제 내고 채점하는 대화가 아닌


친구와 놀 때 어떤 것은 재밌었는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좋아하는 친구가 생겨서 너무 행복한 이야기와

새롭게 산에다 본부를 만드는 이야기 등  


아이들의 말 속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들어있고 그 세상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소아정신과 의사 김현수 선생님께서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다.



한국은 부유한데 가난한 마음으로 살고  경쟁하고 남 탓하면서 불행하게 산다고

그러다가 하위그룹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면 죽음 택한다.

oecd 가입국중 15년 이상 자살 1위일 정도면 ‘내전’ 이상인데도 사회와 국가가 신경 쓰지 않는  죽음에 대한 숭고함 없는 이런 사회에 아이들을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다수가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어 본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도록 서로  열린 마음으로 함께 키우는 희수자연학교를 꿈꾸면서 만든 아카데미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기본이 탄탄한 사회를 꿈꾸며 부모님들이 건강하게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기초를 탄탄히 잡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공동체를 꿈꾸어본다.  



글을 다쓰고나니 이 꿈이 이루어질것처럼 첫눈이 내린다

뒷마당 그리고 앞마당에 새눈이 내린다

갓 내린 눈에서만 볼수있는 리얼 눈결정체다.


선명하진 않아도 눈 결정체를 보는것 만으로도 축복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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