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뉴스만 나오는 채널에 맞춰진 휴게실 TV에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집회와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의 이야기가 쉼 없이 전파를 타고 반복 전달되고 있었다. TV 속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의 표정에는 어떤 분노가 드러나 있다.
촛불집회 화면은 군중의 거대한 파도가 된 촛불은 줄을 맞춰 너울대며 집단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너울 속엔 지도자의 무능과 불통, 권력 주변 비선 실세들의 비리와 부패, 탐욕, 그런 권력에 기대어 기생했던 대기업 CEO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너울대며 전해졌다. 무관심에 대한 괜한 미안함이 촛불의 너울을 타고 밀려왔다.
반면에 권력자를 지키고자 하는 태극기 집회에 대한 이야기는 거친 이미지가 주류였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이들은 죽여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푯말이 보이고, 군대여 일어나라라는 푯말도 보인다. 방송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도 군복을 입고 야구 방망이를 들고 사람을 위협하는 말들을 쏟아 내는 이들의 목소리는 분노와 함께 상대에 대한 증오심을 무차별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두 집단이 사생결단을 하고 내는 목소리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못 비장해 보이는 주장들이지만, 지금 나에게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내 속에서 나도 평화롭게 이야기를 하자는 마음과 과격하게 상대를 대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정도의 상황인식을 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갈등하고 있다.
나의 기다림에도 분노가 묻어 있다. 심장박동에서 시작된 거친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어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엔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소파에 몸을 깊게 묻고, 팔짱을 끼고, 말없이 TV만 응시한다. 그나마,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많은 시간들과 지난 기억들에 대한 성찰,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어 내 엉덩이가 휴게실 의자에 붙어있다.
중간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다림의 장소인 휴게실에서 이렇게 멍한 상태로 두 시간째 버티고 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게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대걸레가 발을 치지 않았으면 내가 두 시간 넘게 부동의 자세로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두 끼를 건너뛰어도 배고픔은 없다. 다만 입술이 타고 목이 말랐다. 커피자판기에 동전을 넣은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300원짜리 일반 커피냐, 500원짜리 고급 커피냐? 일반과 고급! 커피자판기도 일반과 고급을 구분하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난 언제나 일반의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 200원 정도 금액의 차이만큼 맛에는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아서 저렴한 버튼을 눌러 왔다. 오늘은 500원의 고급 버튼을 눌러보고 싶었다. 200원 차이의 고급은 어떤 것일까?
고급지게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분도 고급스러워지는 듯했다. 고급 진 커피 향을 맡으며 종이컵을 입에 갖다 대니 200원의 차이가 맛의 차이가 아니라 기분의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그동안 너무 일방적인 버튼만 누르며 살았구나. 하나로 정하지 말고 다양하게, 이렇게 기분이 달라지는, 고급 버튼도 둘이 같이 일찍 눌러볼 것을... 우린 일관되게 선택한 버튼 하나만 누르고 살았구나.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작은 후회와 함께 또 미안함이 밀려왔다.
“어머? 아직도 안 나오셨어요?”
“아, 네.”
“어떡해요... 걱정이 많으시겠네!”
우리 방을 스쳐간 할머니의 큰 딸이다. 인사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신데 말이 너무 많았고 오지랖은 태평양처럼 넓었다. 겨우 반나절을 같이 있었지만 불편함을 표현했기에 걱정하며 인사를 건네는 쪽도, 그 인사를 받는 나도 어색했다.
몇 년전 어느날, 입춘이 지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집사람 수술이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늦어지고 있었다. 수술실과 입원실, 간호사실을 오가며 의료진에게 내 불안과 불만을 호소하며 항의했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노를 안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대기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커지는 분노, 이젠 누구를 향하는 지도 알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 입장과 퇴장, 회복실 이동을 볼 수 있는 이 휴게실에 마치 주인처럼 하루 종일 머물다 보니 환자나 청소하시는 분, 보호자, 간병인 등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힐끗거리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 이전의 자세로 돌아가 TV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 그 한 시간은 1년처럼 더디게 흘렀다.
TV 뉴스가 제공되는 화면 옆, 수술실 현황 화면에 떠 있던 아내의 이름이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졌다. 수술에 들어간 지 6시간 만이었고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어진 시간이다. 수술실에서 나와 자초지종 설명을 마친 의사는 30분은 더 기다려야 된다고 했고, 간호사는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올라오니까 입원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 소리들은 귀를 타고 흘러 나갔다. 시간에 묻어있던 분노가 기쁨과 반가움으로 변했고, 예정보다 세 시간을 더 기다린 나는 쏜 화살보다 더 빨리 회복실을 향해 달려갔다.
이 순간이 끝은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제와는 다른, 낯설고 힘든 상황들이 내 앞에 나타나겠지만, 지금은, 일단은, 터널 같았던, 지옥 같았던, 30년보다 더 길었던 세 시간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