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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by 이종준

영화 ‘세븐’을 다시 보았다. 젊고 열정적인 형사 브레드 피트와 퇴직이 6일 남은 노련한 형사, 모건 프리먼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온갖 죄악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배경으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설정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와 현장에서 단서를 찾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형사들이 대치하는 구도가 아주 재미났다. 몇 번을 보았지만 여전히 극중 긴장감이 실감나게 와 닿았다. 영화를 재밌게 빠져들면서도 30대에 가졌던 관점과 같은 영화를 50대에 다시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져 있다. 예전에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감상의 주 포인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의 주제인 7대 죄악, 1. 탐식 2. 탐욕 3. 나태 4. 성욕 5. 교만 6. 시기 7. 분노의 대한 원형적인 의미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있다. 영화에서도 7가지 단어의 의미가 죄악시 되는 과정을 적절히 설명해 놓았고 7가지 죄에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 너무 과한 것들에 대한 경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단테의 신곡은 작품이 발표된 중세 14세기의 권력자인 교회에서 필요한 통치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내어 지키고자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배층에게도 7대 죄악과 관련한 도덕적 기준율을 적용하여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인도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아래층으로 내려 올 수록 종교적인 배려와 아량보다는 통치적 가치로서의 압박과 하느님의 신민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시가 강요를 넘어서, 공포 수준의 기준을 문학작품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탐식부터 보면 당시의 지배자들의 입장에선 대부분의 백성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면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그림들을 보면 평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빼빼 말라있고 성직자들은 기름이 번들거리며 살이 쪄 있다. 과연 어느 계층이 탐식의 죄를 범했을까? 하층민들이 쓸데없이 욕심을 내는 것과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지배자들의 이익에는 반하는 행동들이다. 아이를 가질 정도외의 성생활을 제한하는 것도, 무지한 백성들이 교만한 것도, 백성이 지주를 시기하는 것과 지주들의 폭정에 분노하는 것도 지배자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을 지키고 있는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예전엔 영화의 내용을 따라 7대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정의가 되고,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도 몇몇 단어에서의 개인적인 신념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창작물의 뒤편에 있는 타락한 종교인들과 부자인 지배층들의 음험한 의도가 숨어 있는듯하여 창작자들이 의도한 바를 걸러내고 내 자신의 기준을 적용하여 작품을 감상했다. 교훈적인 이야기의 일방적인 전달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예전과 달라졌다.


올해 들어 집사람이 많이 아팠다. 그 이후 나는, 올 한해를 게으름 피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부지런하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 상황에 대처하기가 더 어려워 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움직였다. 또 병원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의 평균 속도를 늦춰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병원침대 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싶을 정도로 늦게 간다.

퇴원 후, 외래 치료를 하는 날도 시간의 정지 상태는 연속된다. 예약하고 기다리고, 접수하고 기다리고, 아주 잠깐 진료와 치료를 받고, 연관된 다른 치료를 받기 위해 또 다시 접수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병원 일은 오고 가고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다. 처방전 받고, 다음 치료받는 날을 예약하고, 약을 타며 기다린다. 기다림을 시약으로 개개인의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곳이 병원이다. 병원은 마음가짐이 아예 느긋해야 정신건강에 좋고, 성품이 게으를수록 치료효과는 더 좋은 공간이다.

퇴원을 하고 아내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세끼를 꼭 챙겨먹는 게으름을 실천했다. 아침엔 출근 하느라 바빠서, 점심엔 일하느라 바빠서, 저녁엔 회식하느라 건너뛰었던 식사 패턴을 바꿨다. 모든 일정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세끼 식사는 꼭 하는 것으로 정했지만, 요즘은 식사를 건너뛰는 것보다 게으르게 챙겨먹는 것이 더 힘든 세상이다. 매일하던 청소를 일주일에 한번 내가 쉬는 날에 하기로 했다. 빨래도 사나흘 모아서 하고 웬만한 세탁물은 세탁소에 맡기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진즉에 이렇게 할 걸, 이십년 넘게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소수의 비선인사들이 국정을 농단한 무능력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촛불로 타올랐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자 집사람의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 나는 오래된 계획을 실천하기로 냈다. 그 동안 ‘무슨 일이든, 어떤 행동이든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로 살고 있던 친구들을 구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한없이 미뤄지고 있었고, 올해도 유야무야로 넘어갈 것 같았던 고등학교 절친 세 명과의 2박3일 제주여행을 집사람의 동의를 받고 적극 진행을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여행을 통해서 근면함, 아침형 인간에서 벗어나 무작정 게으른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올해도 바빠서 어려울 것 같다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던 친구들에게 게으름의 건강한 효용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했다. 여행을 간다면 부지런히 돌아다니지 말자고 했다. 여행에서라도 좀 나태해 지자고 했다. 너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없는 내 삶이 되어버린 나에게 진정한 쉼과 휴식에 대한 욕심을 내자고 했다. 부지런히 살았던 시간은 사흘만 멈춰보자고 했다.

그러자 한 친구는 근처 만화방에서 만화를 빌려 하루 종일 숙소에서 만화보기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제주도 해수욕장 어느 한 구석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멍 때리며 바다만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여행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50대가 된 친구 넷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우리 옆에 게으름을 갖다 놓으니 너무 열심히 살아서 실천하지 못했던 여행을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게을러지면 뭐든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듯 했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집사람에게 여행의 무용담부터 늘어놨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대충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집사람이 피곤했는지 TV는 켜놓고 쇼파에 그대로 누워 잠들어 있다. 나는 조용히 까치발로 움직여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거실 불을 끄고 집사람이 잠든 쇼파 옆에 앉았다. TV에서는 웃음소리가 나고, 살짝 코고는 소리도 들리고, 나는 조용히 맥주를 마신다. 게으름이 좋은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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